영주동에서 사신 지 오래되셨다고 들었어요. 
영주동에서 산 지는 79년도부터 살았나? 79년부터 여태까지 살았으니까, 한 30여 년 넘게 살았나 봐요. 

     영주동에서 어떻게 하루를 보내세요?
별다른 일은 안 하고 그냥 주부니까, 밥하고 빨래하고 그러죠. 그리고 가끔 강좌 있으면 듣고. 복지관에 나가서 또 좋은 프로그램 있으면 듣고. 하모니카를 좋아하니까, 하모니카 불고.

     하모니카는 언제부터 배우셨어요?
하모니카 배운 지 한… 10년 넘었어요. 그래서 지금 하모니카 가져왔어요
     이 하모니카가 10년 넘게 쓰신 하모니카예요?
그럼요. 성격이 꼼꼼해 가지고, 산 날짜를 다 기록해 놓거든요. 그러니까… 2011년 11월 28일에 샀네. 아직 멀쩡해요. 3개 챙겨왔어요. 

     3개나요?
집에는 한 30개 더 있어요. 그런데 내가 죽기 전에 그거 다 팔아버려야 될 것 같아. 나 죽으면 어차피 버릴 거니까.

     30개면 하모니카를 정말 많이 가지고 계시네요. 하모니카에 대해 설명해 주실 수 있어요?
다 갖고 왔으면 진짜 좋았겠다. 근데 안 쓰고 다 모셔놓은 거야. 난 하모니카가 좋더라고. 우선 제일 처음에 가면 기본으로 C를 사요. C에 반음 올라가면 C 샾. 그리고 이제 조용히 듣고 싶다 하면 A. 또 구슬픈 노래나 옛날 노래를 하고 싶다면 A 마이너. 이렇게 기본적으로 4개는 있어야 돼. ​​​​​​​
     주로 언제 하모니카 연주하세요? 
악기가 작아서 소지하기가 좋아요. 난 누워서도 불고, 그냥 쓸쓸할 때도 불고, 막 아무 때나 가지고 다니면서 불거든요. 그래서 좋아요. 요즘은 복지관 ‘합주반 프로그램’이 생겼는데, 하모니카가 한 서너 명 되고 우쿨렐레가 한 17명 되는 동아리가 있거든. 그래서 매주 금요일마다 나가는데 너무 즐거워요, 사는 게. 이왕 하모니카 들었으니까 연주할게. 잘해야 할 텐데.

     저희는 하모니카 연주를 잘 모르기 때문에 틀린 건 어머님만 알아요. 
이렇게 갑자기 여러분들 앞에서 하려니까… 떨리네. 어떤 곡 들려드릴까? 뭐가 좋을까? 제일 어려운 거… 뭐가 좋을까?

     최근에 배우신 곡으로 들려주시면 어떨까요?
배운 지는 오래됐고. 지금은 복습 상태야. 그냥 내가 알고 있는 걸 재능 기부하는 중이랄까. (연주) 여기까지. 눈물 나려고 그래, 좋아서.

     멋진 연주 감사해요. 하모니카 가방 안에 들어있는 종이는 뭐예요? 악보를 손수 다 정리하신 거예요?
옛날에 적어놓은 게 있더라고. 

     하모니카는 어떤 의미에요? 
애장품이지 뭐. 그냥 애장품이고, 언제나 접할 수 있으니까. 우리 애인?(웃음) 안 그래도 나이 들어 악기 하나쯤 하면 되게 좋다고 하잖아. 그러니까 자기 즐길 거리는 꼭 하나 있어야 돼. 우리 아저씨가 지난 3월에 돌아가셨거든. 근데 술 먹고 담배 피우는 거 말고는 진짜,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었어. 그래서 내가 진짜 나이 든 분들한테 절실히 권하고 싶은 건, “꼭! 한 가지씩 취미 활동을 하시라” 하고 싶어요. 하여튼 나이 들기 전에 한 가지씩 자기가 좋아하는 걸 택해가지고 그걸 즐기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노후에 외롭지 않을 것 같아.
     하모니카 연주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우리 오빠가 저랑 13살 차인데… 젊은 나이에 세상을 버렸어요. 우리 오빠가 하모니카도 잘 불고 미술도 잘 그리고… 그랬거든. 그래서 옛날에 그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하는 그 노래를 너무 잘 불렀어요. 그래가지고 지금도 가끔 그 노래를 부르면서 오빠를 생각하거든요. 우리 오빠는 시도 잘 쓰고. 하여튼 그래서 나도 오빠를 따라서 시도 쓰게 되고… 하다보니 오빠를 따라서 한 게 아니라 좋아서 쓰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시집도 한두 번이나 내고. 아무튼 좋아서 시작했어요, 좋아서.

     오빠가 큰 영향을 끼쳤네요?
이렇게까지 전문적으로 하려고 하지는 않았는데. 하여튼 거의 모든 과정은 다 밟았어요. 끝까지 전문가 과정도 밟고 했는데, 이제 다 잊어버렸지. 전문가 과정이라 남 가르칠 정도로 배우기도 했는데 지금은 거의 다 잊어버렸어요.

     어머님께서 시집도 내셨다고 들었어요. 시집도 내셨으면, 시도 쓰시는 거잖아요.
시는 그냥 끄적거리는 정도. 

     시집 보여주실 수 있어요?
첫 시집이에요.(책 보여주시면서) 그냥 끼적거리면서 모아둔 글을 어느 기회가 돼가지고 그렇게 쓰게 된 거지. 뭐, 크게 내세울 건 없어요. 졸작이지만 내 살아생전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던 거지, 뭐.
     밝은 분위기의 시도 있네요. 그런데 시 속에 등장하는 ‘이재은’은 누구예요?
딸. 우리 딸인데 78년생. 호주 간 지 한 15년 됐는데 워킹 홀리데이를 가서 정착했어요. 내가 도움 하나도 안 줬는데, 거기서 영어 배우고 해서 그냥 살아요. 너무 장해, 대단해. 영어를 외국인들하고 막 하더라고. 그래서 “너, 재은아. 너, 영어를 왜 이렇게 잘해?” 그러니까 “엄마 먹고살려면 할 수 없어요.” 하는 그 소리가 너무 안타깝더라고. 나는 그 말을 잊을 수가 없어. 이번에 아버지 돌아가시는 바람에 와서 한두 달 엄마 위로한다고 있다가 얼마 전에 갔어요. 며칠 전에, 27일인가?

     이 시집에서 제일 좋아하는 시는 뭐예요?
여기… 뭐가 좋을까?

     제일 마음이 가는 시 알려주세요.
근데, 하나하나 이렇게 보면 다 좋은데…. (웃음) 아니, 제가 사놓고 잘 안 입는 밍크코트가 있거든. 거기에 대해서 쓴 게 있어요. 밍크코트 산지 한 십여 년 다 돼 갈 거라. 제목이 「구시렁대는 밍크코트들」인데 
한 벌에 100여만 원도 넘게 주고 산 장롱 속 밍크코트 두 벌. 멋있어서 산 파스텔 색조 밍크코트. 메이커라서 산 검은색 밍크코트. 날이 너무 따뜻해 유행이 살짝 지난 듯해. 입는 이 별로 없어. 바깥 구경 못한 밍크코트들. 자기네들 멋진 자태 뽐내지 못하니 장롱 문 열 때마다 구시렁구시렁. 입지도 않을 거면서 왜 비싼 돈 주고 굳이 사, 우릴 여기에 계속 가둬만 두냐고. 구시렁 구시렁대는 밍크코트들. 내 과유불급을 자책해 보지만 만구 소용없는 짓. 벌써 몇 년째 몇 백만 원이 장롱 속에서 쿨쿨 잠자고 있다. 
재밌죠? 그냥 되지도 않는 거 한번 써봤어요.

     좋네요. 오늘 같은 날 밍크코트 입고 오셨어야 되는데.
그러니까요. 그래도 지난 겨울에는 한두 번 꺼내 입었어. 내가 죽기 전에 입을까 하고.

     직접 쓰신 글을 다시 읽을 때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그냥 유치찬란할 때도 있고. “아, 내가 이런 이야기도 썼었나?” 이럴 때도 있고, 그래요.

     시는 보통 어디서 쓰세요?
시를 쓰는 장소가 정해져 있지는 않고, 그냥 그냥 특별한 구절이나 뭐가 떠오를 때 폰에 메모했다가 컴퓨터에 그냥 모아두지. 그렇게 모아뒀다가 써요.
     영주동의 풍경이 담긴 시들도 있나요?
여기에 있어요. 「영주동 이야기」 한번 읽어볼게요.
바다 이름 영 고울 주 고운 이름. 영주동 살기 좋은 마을 옛 이름은 임소랍니다. 11만여 구민이 도란도란 모여 사는 부산 중구 구도심. 아담하고 시골스러운 한적한 마을 영주동 이야기. 산비탈의 숨은 이야기와 아름다운 경치의 산복 도로는 밤이면 화려한 불빛이 너무 예뻐요. 영주 터널 위 버스정류소에는 작고 아담한 글마루 도서관과 오가는 사람이 짬짬이 쉬다 갈 정자. 주민들의 쉼터 반경 10분 내에 부산역과 국제시장, 깡통시장, 자갈치 시장에 있어 공산품, 수입품, 수산물이 천지 빼까리. 4월 중순 민주공원에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겹벚꽃을 구경하러 방방곡곡에서 사람들이 몰려온다.
영주 하늘 전망대에 가면 영도다리, 용두산공원 보이고. 영주동 오름길 모노레일 오르락내리락 주민들의 다리 영주동 이름을 이은 영주로, 영주동과 초량을 잇는 영초길, 영주동서 중앙공원 가는 길. 영초 윗길 대신동과 영주동에 있는 대영로, 중구 동구 경계 따라 중동길, 동강동과의 사이는 동영로, 영주동서 중앙공원, 민주공원 따라가면 망양로, 중앙공원로, 민주공원길, 영주하늘눈전망대 가면 영도다리, 용두산공원 보이고 영주동 오름길 모노레일 오르락내리락 주민들이 달리 오르락내리락.옛날에 여기 정자가 있었었거든요, 이 앞에. 지금은 정자가 없어져서 이걸 노래로. 노래 가사를 내가 쓰기도 했어. 그리고 CD로 나왔어요. 정자가 있을 때 운치가 있고 좋았는데… 영주동 모습이 다 보이지 않나요? 다 보이죠?

     네, 영주동의 모습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 같아요. ‘글마루 도서관’도 나오네요. 영주동에 대해서 굉장히 잘 알고 계시네요.
별거 아닌데 또 그렇지. 「나 임소랍니다.」는 영주동이 옛날에 ‘임소’였다는 사실을 알고 굉장히 새롭더라고.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대해서 쓰려고 자료도 찾고 하다 보니 여기가 임소였다는 사실도 알게 된 거야. 길이 14개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고, 많이 알게 되더라고. 하여튼 공부를 해야 돼. 막 여기저기 쫓아다니면서 공부를 해야 돼.
     지금까지 해오시던 여러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잖아요. 앞으로 더 하고 싶으신 건 없으세요?
‘영주동 복지관’ 본관에서 미술 수업도 하다가 지금은 체력도 딸리고 해서 잠시 쉬고 있는데. 거기서 보테니컬 아트도 하다가 그만하고. 하고 싶은 거는… 뭐, 많이 있어요. 하고 싶은 프로그램이나 열정은 많은데, 몸이 안 따라줘서 이제는 좀 쉬엄쉬엄하죠.

     주기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으세요?
화요일은 우쿨렐레 하러 복지관에 가고. 우선은 우쿨렐레하고 하모니카만 하고 있어요. 그냥 날라리처럼 이렇게 노래하고, 이러는 거도 하고.

     그럼, 지금은 고정된 일정으로 화요일에 우쿨렐라만 하고 계신 건가요?
화요일에 우쿨렐레, 금요일은 하모니카. 우쿨렐레는 작년부터 시작했는데, 아직 코드도 못 잡고.
     하모니카와 우쿨렐레 중 어떤 악기가 더 연주하기 좋던가요?
하모니카가 훨 낫지, 우쿨렐레보다. 우쿨렐레대로 아름다움이 있는데, 하모니카는 일단 소리가 웅웅 잘 나오고 우쿨렐레는 좀 얌전하고 조용하잖아. 우쿨렐레는 코드 잡기가 너무 힘들고 어려워.

     하모니카 연주가 우쿨렐레 연주보다 더 쉬운거에요?
그건 아닌 것 같아. 하모니카도 입으로 그냥 풀었다 놨다만 하면 되는 줄 아는데, 이것도 상당히 어려워요. 깊이 들어갈수록 어려워. 

     하모니카 연주로 하고 싶은 활동이 있으셨을까요?
계속했더라면 일본 연주도 가고 그랬을 건데. 일본 연주도 사실 가려고했었는데, 우리 아저씨도 아프고 이러는 바람에 내가 하나씩 하나씩 다 접었어요. 이야기 할머니 활동도 하다가 접고, 하모니카도 접고. 뉴스 기자로도 활동했거든. 그것도 한 10여 년 했는데, 그것도 접고. 막 다 접어버리고 싹 쉬었다가 요즘 들어서 조금씩 다시 시작하는 거예요.
     하모니카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나요?
하모니카를 더 잘 불고 싶어. 잘 불어가지고 위문공연 다니고, 이러면 좋지요. 환자들 있잖아, 병원에. 내 하모니카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마음의 평안을 찾고, 좀 위안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그러자면 첫째는 내가 건강해야 되겠지만. 두서없는 얘기를 너무 많이 한 것 같네요.

     아니에요, 어머니의 삶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던 대화였어요. 
살아있는 한 열심히 살다 가야지. 열심히 살다 갈 거야. 쉴 필요가 없어. 나는 만날 친구도 많고, 아직 할 일도 많아. 애들은 항상 그걸 내려놓으라고 말해. 내려놓고 편히 쉬어라 하지만, 나는 집에 있으면 진짜 멍청하니, 그런 사람밖에 안 되거든. 그래서 내 스스로 할 일들을 찾아다니는 걸 좋아하는데, 아이들이 자꾸 브레이크를 걸더라고. 자꾸 나이 생각하게 하고. 그리고 아빠가 이번에 갔다보니까 계속 연관시키고, 충격도 있고 하니까 집에서 편히 있었으면 하는 그런 심정인 것 같아요. 그래서 자꾸 나를 쉬게 하려 하더라고요.
     자녀분들이 어머님의 건강이 걱정되나 봐요. 그래도 어머니는 하고 싶은 일이 많고, 잘하시는 것도 많다 보니 여러 경험을 해보셨으면 좋겠네요. 특히, 하모니카 연주는 제일 좋은 것 같아요. 
한 곡 더 불까?

     그럼, 엔딩곡으로 딱 한 곡만 더 들어볼까요? 
옛날에 우리 오빠가 이 곡 엄청 연주했었는데…, 세상에, 지금 내가 이 곡을 접하고 있으니까 너무 좋아. 백설인가? 백난인가? 부른 그 노래거든. 이게 근데 너무 좋아.

     곡을 다 외워서 연주하시네요?
자연스레 익혀져서 그냥 부르게 돼. 또 우리 엄마가 부르던 곡도 있었는데, 우리 엄마가 즐겨 부르던… 우리 엄마는 나랑 36살 차이였었어. 근데 74세에 돌아가셨거든. 지금 살아계신다면 몇 살이고… 내가 70살이 넘으니까 114살인가 보네. 우리 엄마가 자주 부르던 노래 한 곡만 더 연주하고 말게, 미안합니다. 

     연주 계속 들을 수 있어요.
저도 하루 종일 하모니카 불 수 있어요. (수줍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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