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가 알고 지낸 지 오래된 것 같아요. 같이 봐왔던 몇 분들은 영주동을 떠나고, 지금 유일무이하게 영주동에 남아계시잖아요?
그렇죠, 다 가버렸어. 베스트 프렌드도 가고.

     그래요?
민아 언니 갔죠. 함께 프로그램하던 복지사도 딴 데로 가네. 

     어떠세요?
좀 허전한데, 한편으로 생각하면 너무 의지만 했는데… ‘내 혼자 좀 해봐야 하나?’ 그런 것도 있고. 오로지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선생님이 하고 싶은 것은 뭐예요? 
느린 학습자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로서 내 아이의 친구를 만들어주고, 사회성을 길러주고 싶어요. 그래서 활동을 하려는데, 정작 그 아이들을 찾기가 쉽지가 않더라고요. 특히, 우리 동네에서는. 그래서 일반 친구들과 같이 활동하다 보니까 격차도 생기고. 활동을 하는데, 내 아이는 별로 신통치 않아 했던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거기서 아이가 배운 것도 있고, 반반이에요.

     달리 생각하면 도움도 되었다는 뜻인가요?
결과적으로 내 아이는 좀 잘 컸죠. 왜냐하면 내가 억지로 끌고 다니고, 자기도 잘했고. 내가 힘들었었던 만큼, 느린 학습자 아이를 둔 엄마들도 힘들 거란 말이죠. 눈치 안 보고 수업받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어요. 제가 친했던 사람들은 보통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이다 보니, 안 맞더라고요. 그래도 그 상황에 맞춰서 활동하다가, 나중에는 ‘내가 이제 정말 해봐야 하겠다.’라고 생각하고 부산에 있는 커뮤니티에 들어가게 됐어요. 느린 학습자 엄마들만의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활동을 했는데, 우리 동네는 유일무이하게 나밖에 없는 거야. 중구에는 나밖에 없어. 다른 구에는 적어도 5명씩 모여서 활동할 수 있는데. 그래서 올해는 ‘내가 한번 해볼까?’하고 모임을 만들게 된 거죠.
     시작하기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선뜻 시작하려니, 기존에 함께 했던 사람들과의 추억도 있고. 그 사람들도 이해시켜야 하고. “내가 이런 걸 하려는데,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어봐야 하는데….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이사 가고 멀어지니까 “이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다들 말해주더라고. 그래서 이렇게 됐어. 좋은 점도 있는데, 안 좋은 점도 있고, 반반이에요. 왜냐하면 혼자가 되니까 의논할 대상이 없어진 거예요. 그렇다고 주위에 의논할 대상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다른 구에 살고 있는 엄마들이 있기 때문에. 그래도 가까이에서 눈만 뜨면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없어지니까 그건 아쉽고, 외롭고…. 그런데 내 일에 집중하고, 눈치 안 보고 할 수 있는 좋은 점도 있어요.

     어떤 부분들을 눈치 보셨을까요?
사람들의 인식이 썩 좋지는 않거든요. 아이가 경계에 있다 보니까.

     주변의 인식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위한 어떤 활동을 해오고 계시나요?
부모 교육을 먼저 하고, 여러 선생님을 초청해서 수업을 진행했어요. 재미있게 끝냈어요. 제가 영주동을 돌아다니면서 제가 하려는 활동에 대해 글마루 도서관 선생님께도 얘기하고, 그림 수업해 주시는 조선임 선생님한테도 말씀을 드렸어요. 그랬더니, 우리 아이들만을 위한 수업을 만들어주신 거예요.

     주변에서 도움을 받아 활동하고 계시네요?
그동안 몇 년 활동을 해오면서 선생님들한테 인사하고, 조금씩이나마 내 아이를 노출했거든요. “쌤, 내 아이가 좀 이렇습니다.”라고. 그때는 참 많이 울었어요. 그리고 아이가 느린 학습자라는 걸 알게 된 계기가 학교에서 먼저 알아차렸어요. 선생님이 “어머니, 아이가 좀 다른 것 같아요. 좀 느린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걸 받아들이는 게 힘들었어요. 말만 하면 울었어요. 근데 지금은 애가 중학교 2학년이니까 눈물은 안 나. 그리고 이제는 엄마들을 생각하는 거지. 제가 느꼈던 부분들을 다른 엄마들도 느끼셨을 거로 생각해요. ‘눈치 안 보고 뭐라도 배우게 하고, 다른 엄마들과 같이 이야기 나누고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런 자리를 만들고 싶어서, 이번에 활동을 그쪽 방향으로 바꿨죠. 바꿔서 열심히 하고 있는데, 아직은 좀 힘들죠.
     이제는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사람이 됐잖아요. 하나의 공동체를 운영해 나가는 건 어떠세요?
작년과 재작년에 활동했을 때는 그냥 소소하게 아이들이랑 함께 배우고, 장난치고. 엄마들이랑 이야기하고 했다면… 지금은 활동 범위가 많이 커졌어요. 그리고 엄마들이 온 힘을 다해서 애를 키우고 있는 그 마음을 아니까. 마음이 무겁고 부담스럽고 행동 하나가 조심스럽죠. 더 어른이 된 것 같은. 어른에서 또 어른이 된 것 같아요.

     발전해 나가고 계시네요.
그런데 발전하려면 계속 활동이 이어져야 하는데, 앞으로 도시재생사업이 끝난다 하니 또 여기서 활동이 끊기는 게 아닌가 싶은 거예요. 그래서 조금 불안하기도 하고… 조바심이 좀 생겼죠.

     안정적으로 활동을 이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겠네요?
그렇죠. 뭔가 해보려고 하는데, 중구에는 학부모가 안 나타나는 거예요. 내가 이렇게 현수막을 붙여도… 그래도 다른 곳에서라도 와주니까. 엊그저께 조선임 선생님께서 미술 수업을 해주셨어요. 수업을 들으러 한 명은 해운대구에서 오고, 한 명은 구평동에서 왔어요. 수업하는데, 너무 좋은 거야. 누구 하나 “아직도 안 했어?”, “왜, 이거 못해?”, “니 그림 이상해.” 이런 말도 안 듣고. 아이들이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그림을 그리는 동안 선생님도 기다려주고. 분위기가 되게 좋더라고요. 그래서 보람이 있었어요. 

     비슷한 친구들끼리 모인 모임인 만큼,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공감대가 형성되죠?
그렇죠. 애들이 못하는 건 아니니까, 기다려주면 하는 데 느릴 뿐인 거지. 남들 10번 해서 배우는 거 얘네들은 백번, 천 번을 해야 배우니까. 성장 속도가 느린 계단이에요. 한꺼번에 빠르게 막 올라가는 게 아니고, 가다가 멈췄다가, 또 하나 올라가고. 그러다 포기해야 하나 싶을 때, 그때 딱 변해요. 애들이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하니까, 기다리는 엄마도 힘들고, 해야 하는 아이도 힘들고. 그런데 또 그 끈을 못 놓는 거지. 애들이 좋아지니까.

     그렇네요.
그래서 중구도 느린 학습자 아이들을 위한 조례가 생긴다면 ‘발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서 조례도 추진하고 싶고 한데…. 그것도 주민이 모여야 되잖아, 그래서 지금 찾고 있어요. ​​​​​​
     이제는 공동체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공동체를 꾸려나가야 하는 위치의 사람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하신 것 같네요.
막중하죠.

     공동체를 운영하다 보면, 선생님 아이가 느린 학습자인 상황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야 하는 경우도 생길 텐데, 이런 부분을 아이와도 이야기를 나눠보셨을까요?
내가 이 공동체를 준비할 때 아이한테 그랬어. “엄마가 너 키우면서 이래저래 힘들었다. 그래서 다른 엄마들이랑 너와 비슷한 친구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하고, 엄마들 교육을 시작하려고 한다. 근데 네 이름하고, 네가 어느 학교 다니는지는 말 안 할 거야”라고 했는데 애가 이제 크고 철이 들었는지 “괜찮아, 엄마. 엄마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고, 내 상황을 말해도 돼”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자기는 이제 괜찮다는 거예요.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서 자기를 받아들이는 데 힘든 점이 있었거든요. 정말 발달 수준이 경계에 있었기 때문에…. 여러 기관, 병원, 학교 도움받아서 넘겼어요. 고비를 넘기고 이렇게 얘기를 서로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어요. 

     아이의 이해심이 활동을 하는 데 큰 힘이 되었겠어요?
“나와 비슷한 친구들을 도와주면 좋지!”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아들한테도 허락받고, 본격적으로 하게 된 거지, 마음 편하게. 부산의 느린 학습자 커뮤니티 이름이 ‘아다지오’거든요. 음악에서 아다지오는 ‘느리게, 천천히’ 잖아요. 그래서 이 단어를 활용해서 이름을 지었다고 해요. 그리고 지금 우리 영주동에서 활동하는 공동체 이름은 ‘너울가지’예요. 너울가지 뜻이 뭐냐면 ‘여러 사람과 친해지는 솜씨’로 순우리말이죠. 이런 부분이 우리 애들한테도 필요하고. 엄마들한테도 필요할 것 같아서. 그리고 영주동에서 친해진 선생님들 도움이 없었다면, 지속적으로 활동을 못 하죠. 

     이름 참 잘 지으신 것 같아요.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이름을 지으면서 많은 생각이 드셨겠어요?
네, 그렇죠. 지금 생각해 보면 ‘좀 더 일찍 했더라면 어땠을까?’, ‘작년부터 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때는 용기가 안 났어요, 내가.​​​​​​

     어떤 이유로 용기가 안 났을까요, 용기를 내게 된 계기가 있나요?
갑자기 활동한다고 하면 “니가 뭔데?” 이럴 수도 있잖아요. 그래도 아이가 이제 중학생이고, 십여 년을 키웠다 보니 용기를 났죠. 그리고 시간이 더 흐르면 얘가 청년이 되잖아요. 그럼, 교육청에서 받을 수 있는 지원과 교육은 끝나는 거야. 이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면 도움을 받을 수 없어요. 그러니까 이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서까지 지원을 받으려면 구의 조례가 필요한 거예요, 평생교육으로. 아이들은 점점 커가고 있고 ‘사회에 적응하려면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겠다.’ 싶으니까. 마음이 급한 거죠. 그래서 다른 지역은 어떻게 하고 있나 보러도 가고. 근데 그것도 생각만큼 쉽지가 않아요.
     어떤 점에서 쉽지 않나요?
일상을 다 팽개치고 다닐 수도 없고. 그리고 남편과 딸의 반대도 좀 있고. 왜냐하면 돈이 되는 일이 아니잖아. 일단 ‘직업이 없다 보니까 직업으로 하면 되겠지?’란 생각은 하지만, 이런 건 또 직업이 될 수 있는 활동이 아니잖아. 그리고 “도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 힘들게 활동 하느냐?”란 질문도 받아요. 활동을 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을 마주치게 되고, 사람을 상대하다 보면 힘든 점도 생기잖아요. 사람도 많이 모이고, 관심을 받게 되니까.

     사람들을 상대하며 생기는 관심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네요?
스트레스받고, 그렇죠. 권력도 들어오고. 여러 가지 복잡하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옛날에 정말 엄마들이랑 같이 소소하게 하던 때가 더 나았던 것 같기도 하고….
     
     많은 생각이 드시겠어요. 그래도 아이를 위한 마음으로 지속적으로 활동을 하실 계획이죠?
활동을 시작한 이유도 내 아이가 느린 학습자기 때문에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어서 한 거예요. 이런 개인적인 계기가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하지는 못했을 것 같아요. 내 모든 활동의 시작은 내 둘째 아이. 그 아이 때문에 다 시작하게 된 거니까 끝까지 하려고요.

     아이가 굉장히 중요한 존재이죠. 그래서 가지고 오신 물품도 아이와 관련이 있는 건가요?
네, 손톱깎이예요. 우리 애들 거. 진짜 작죠? 아기들 손톱 깎아주기 좋은 거예요. 손톱깎이 세트로 선물 받았어요. 제품명이 쓰리세븐이라고, 2003년도에 받았어요. 되게 날카롭게 보였는데, 별로 안 날카롭더라고요. 한 살 지나서 큰애 손톱을 깎아보니까 괜찮더라고요. 이상하게 쓰다가 사라져서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다시 돌아와요. 이 손톱깎이가.

     잃어버린 손톱깎이가 계속해서 돌아온다고요?
원래 물건 잘 잊어 먹거든요. 그래도 집 안에서 잃어버려서 찾게 되나 봐요. 아이가 두 명이 있는데, 큰 애가 크니까 이제 안 쓰겠지 생각했는데, 동생 손톱 자를 때도 쓰고 있는 거예요. 둘째 아이 한 5~6살까지 사용하고. 손톱깎이가 워낙 작아서 7살 이후에는 큰 걸 쓰는데, 이걸 못 버리겠는 거야. 잘 깎이기도 하고. 보통 손톱은 애들이 잠잘 때 깎거든요. 하나 깎고 조용히, 숨죽이고 있다가 또 하나 깎고. 손톱 깎을 때 후레시 비추고 깎았었는데…. 내가 안 깎아주면, 혼자 손톱도 못 깎는다고 했는데, 이제는 컸다고 이제 애들 스스로 깎잖아요. 어쨌든 다른 건 잘 잊어버린다고 생각하는데, 이거는 진짜 안 잊어먹게 돼요. 진짜 신기해요. 얘가 어디 갔다가, 돌아오는 것 같아. 오늘도 찾는데, 찾으니까 또 있어. 이걸 보면 애들 키웠던 기억이 생각 나는 거예요.
     비록 지금은 안 쓰지만, 아이들과의 추억이 깃든 물건들이라 소중한 거죠? 보면 손톱을 자르던 아이들의 어릴 적 모습이 떠오르니까요.
애들에게 맨날 얘기했어요. “이게 뭔 줄 아나? 대를 물려서 쓴 거다. 누나 쓰고 너 쓰고. 우리는 딸, 아들이니까 옷은 못 물려줘도 손톱 깎기는 물려준다.”라고 말하면서 손톱깎이 소독하고 이랬었는데…. 뭘 들고 와야 할지 고민은 많이 했어요. 

     고민하던 다른 물건이 있었나 봐요.
우리 아들 돌 때 산 내가 신는 신발이 있는데 ‘그거를 들고 올까?’도 생각했어요. 정말 고무가 늘어나고 이제 못 신을 정도긴 하지만. 근데 이 손톱깎이가 큰 애 때부터 작은 애까지 쓰던 거니까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용한 지 23년 됐지. 

     아이들에 대한 기억과 마음이 묻어있는 물건이 또 있었네요. 선생님의 인생에 아이들이 큰 차지를 하고 있네요.
애들에 대한 마음이 큰가 봐요. 나는 내 인생이 다 애들이었던 것 같아.

     이제는 아이를 위해서 새로운 활동도 시작하셨고요.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주변도 둘러보며 많은 심적 변화도 있으셨을 것 같아요. 
내 애는 내가 이만큼 키웠잖아요. 근데 내가 봤을 때는 다른 아이들도 내 아이만큼 할 수 있을 것 같은 거야. 지금 우리 커뮤니티에 있는 엄마들은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여기저기 공부하러 다니고, 세상을 보여주고 하는 엄마들인 거예요. 근데 안 하는 엄마들이 또 있어요. 모르고 있는 엄마도 있고. 그래서 그런 걸 좀 알려주고 싶고 한데… 그건 진짜 엄마 마음이고. 아이들에게 맞는 교육을 하면, 나중에 아이들이 사회에 나갔을 때 문제없이 사회생활을 할 수 있거든요. 오히려 더 성실한 생활을 한단 말이에요. 근데 그거를 정말 ‘몇몇 애들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엄마들도 있어요. 그런데 그건 아니에요. 

     사회로 나가야 하는 이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계시네요.
그리고 만약에 아이가 정말 사무직에 능통하다거나, 설계도만 앉아서 주구장창 하고 있는 애다. 그러면 그 일을 할 수도 있어요. 시기적절할 때 교육하면 충분히 사회생활 할 수 있는 아이들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고. 그리고 따뜻한 애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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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에서 변화되는 움직임이 필요한 시기네요.
이런 변화가 서울은 많이 일어나고 있어요. 경기도 쪽도요. 하지만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좀 더 더디니까. 우리도 이러한 움직임이 생겨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죠. 그리고 이제 시작이죠, 우리 동네는.

     수도권에 비해 변화의 속도가 느린가 보네요. 하지만 지역에 살고 계시고, 느린 학습자 아이를 키우며 고민하고 행동한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변화에 앞장서시려는 거죠? 
남편과 딸이 그래요. “왜, 네가 사회적 책임을 지려고 하느냐?”고 말하며 반대해요. 근데 내가 안 해도 누가 할 일이라고는 생각해요. ‘내가 지금 안 하면 다른 사람이 할 수 있잖아?’라고. 하지만 내가 한번 해봤으니까, 지속적으로 활동하려 하는 거고요. 솔직히 안 하고 싶기도 해요. 안 해도 될 것 같기도 하고. 부산에 커뮤니티가 있으니까, 거기에 기대고 싶기도 해. 근데 구마다, 중간에 이렇게 하나씩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부산의 커뮤니티는 한 번 다 같이 모이려면 힘들거든요.

     가족들의 반대도 있지만, 여러 곳에서 다양한 모임과 활동이 이뤄졌으면 하는 마음에 지속적인 활동을 하려 하시는 거죠?
단순히 ‘하면 좋을 것 같아서’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런 활동들이 계속해서 있었으면 좋겠다’라고도 생각하고 있죠. 그리고 주변에서 많이 도와준다고도 이야기했잖아요. 그동안 영주동에서 했던 사소한 활동들도 헛짓이 아니었던 거죠. 도와준다는 분들이 있어서, 그게 너무 고마운 거야. 감사한 일이죠. ‘내가 참 인생을 나쁘게 살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진짜 진짜 많이 했어요. 

     그동안의 활동들과 노력이 결실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선생님께서 감사하다고 말할 일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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