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유! 좀 예쁠 때 해야 하는데….

     오늘 워낙 샤랄라하게 입으셔서 사진은 잘 나올 것 같아요. 들고 오신 건 뭐예요?
접시예요. 한 개 더 들고 오려고 했는데 너무 많아서 두 개만 들고 왔어.

     오래된 접시 같아 보여요. 
한 60년 됐으니까, 하나는 파스타 접시야.

     60년요? 
어떻게 그 시절에 이렇게 예쁜 걸 만들었을까! 그런데 우리 어머니 말이 비싸지도 않았대. 그 당시 돈으로는 그래도 비싼 거였을 텐데, 시장에서 팔았대요.

     지금 봐도 이쁜 접시인데요?
그러니까요. 약간 우묵해진 게 너무 예뻐가지고 내가.
     다른 것들도 많이 들고 오셨네요. 또 들고 오신 건 뭐예요?
너무 많지? 이거는 아니고, 나에게 뜻깊은 건… 이거 해야 되겠다. 

     반지 같은데요?
아버지가 엄마에게 청혼할 때 준 거.

     금, 은은 아닌 것 같고 뭐예요?
뭐를 녹여서 만들었다고 했는데… 저희 어머니가 1925년생이고, 당시에 열여덟에 결혼했으니까. 1943년도 정도쯤 됐겠네요. 80년 전, 가난한 부부가 결혼해 가지고 돈은 없고. 주물 같은 걸 녹여서 만들었대요. 두드린 흔적도 보이죠?

     핸드메이드네요.
이렇게 전부 다 두드려서 반지 형태를 만들었나 봐요. 어머니가 보여줘서 봤는데 이 느낌이 좋아서. 제가 저희 어머니 살아계실 때, 다른 거 아무것도 필요 없고 이건 꼭 달라고 했어.
     반지만 받으신 거예요?
어머니한테 받은 거는 이거랑 이제 접시. 좋은 접시, 비싼 접시 그런 거 말고. 정말 자기네가 신혼 때 마련한 거. 돈 조금 벌어서 가서 하나 사고, 또 하나 사고 했던 이야기를 저한테 해주실 때의 느낌이 너무 좋아서 내가 접시도 가지고 있고 싶었어. 

     사용하지 않고, 보관만 하고 있나요?
씁니다.

     언제 쓰세요?
막 쓰지는 않고, 귀한 손님들 왔을 때 써요. “우리 어머니가 남기신 거야.” 설명하면서 쓰고. 반지는 젊은 시절에 끼고 다녔는데, 지금은 내 손가락에 비해 크기도 하고, 원래 뭘 착용하는 걸 안 좋아해서 이렇게 보관하고 있습니다. 한 번씩 생각날 때는 꺼내지. 또 닦기도 하고. 그래서 반짝반짝 윤이 나요.

     그래서인지 오래된 느낌은 덜 한 것 같아요. 
깨끗하죠. 80년이 된 것 치고는.

     그러니까요.
그래서 어떨 때는 ‘가지고 있는 보석을 하나 박을까?’ 싶다가도, 그러면 훼손될까 싶어서 ‘그냥 두는 게 좋지 않을까?’ 그리 생각합니다.
     카메라도 들고 오셨는데, 저 카메라는 뭐예요? 
카메라는 제가 그림 할 때 작품을 찍으라고, 한동안 그림을 많이 사주신 스폰서분이 처음으로 저에게 선물해주신 카메라예요. 가난한 화가는 유혹에 빠지기 쉬워요. 그럴 때 빠지지 말라고. 이것도 한 몇십 년 됐을 거예요. 한번 보자…, 2000년대에 샀으니까 20년 넘었겠네요. 

     그럼, 그림 시작했을 때 선물 받았나요?
아니요. 그림 시작하고 조금 어려울 때. ‘내가 이 길을 계속 가야 하나?’ 그런 고민을 할 때, 저 카메라를 주셔서. 그만두지는 않았겠지만, 힘들었을 때 힘이 됐습니다. 그리고 흔쾌히 매달 그림도 구입해 주셨죠.

     아직 연락하고 지내시나요?
아뇨, 돌아가셨습니다. 

     카메라만 남았네요.
고장이 나가 있지만, 디지털카메라도 한 번씩 꺼내가지고 보고 합니다. 내 인생에 있어서 중요했던 순간들, 지금 저하고 함께하지는 않지만. 내 인생에 있어서 늘 함께해줬던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해 모든 것들을 한 번씩 찍어가지고 또 인화하기도 해요.
     동네 주민분들 대상으로 그림을 가르쳐주는 미술 수업을 하고 계시잖아요. 몇 년 되셨어요?
2020년부터 시작했으니까 이제 4년째 접어들었죠.

     2020년부터 영주동에서 수업을 시작하셨나요? 아니면 다른 곳에서 수업 하시다가 중간에 영주동으로 오신 건가요?
다른 곳에서 수업을 하다가 여기로 왔죠. 왜냐하면 중간에 코로나가 와서 멈칫했다가, 잠잠해지고 나서 영주동에서 수업을 바로 시작했죠.

     영주동에서 언제부터 수업을 시작하신건가요?
2022년부터 했어요.

     미술 수업 이름이 ‘100세 인생 그림책’이라 들었어요. 100세까지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길 것 같아요. 그림 수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먼저 우리 어머니한테 감사하고 싶어요. 저희 어머니가 노후에 저하고 함께 사시게 됐는데 좀 많이 아프셨어요. 다행히도 내가 결혼 안 한 미스다 보니까,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죠.  어머니 케어하면서, 엄마에게 그림을 가르치게 됐습니다. 

     어머니께서 그림을 먼저 알려달라고 하셨나요?
어머니가 오랫동안 아프실 때. 그림을 가르친다기보단, “함께 하자.”, “같이 놀자.”의 의미가 컸어요. 그리고 친구분들도 일부러 오시게 해서 같이 그림 수업도 받고요. 오시면 식사나 다과는 제가 다 제공하고. 제가 노는 날을 하루 정했어요. 그래서 화요일 날 그렇게 했던 것 같아요. 

     선생님 집에서 수업하셨나요?
화, 수가 화실이 조금 편안한 날이라서 하루 정해서 수업을 한 거예요. 이를 시작으로 수업을 들으러 다른 동네 어르신들도 자주 찾아오는 계기가 됐고. 나도 조금 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고. 그림 배울 때 너무 좋아하시고. 그림 배운 이후로 제 그림을 보면서 “색이 너무 많아. 색을 좀 빼줬으면 좋겠어.” 평도 하시고. 사실 그렇게 평가를 한다는 게 어렵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어머니가 어떤 좋은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예술적인. 원래 되게 노래도 잘하시고, 공옥진 선생님처럼 춤도 잘 추시고. 곱사춤이었던 것 같아요. 
     선생님 어머니께서 예술적 재능이 많으셨나 봐요.
그랬던 것 같아요, 어머니는 되게 다재다능하신데 저는 그런 재능이 하나도 없습니다. 정말 1도 없습니다, 그림 그리는 거 외에는.

     어머님과 예술적 취향은 비슷하셨나요?
제가 여성이나 남성 나체를 그릴 때면 “그거 왜 그려?”, “그게 왜 필요해?”라고 항상 물어봤던 것 같아요. 심지어 제가 그려놨던 그림도 자기가 보기 좀 그렇다고, 어느 날 제가 바깥에 갔다 집에 들어오니 제 그림을 버렸더라고요. 처음에는 너무 화가 나고 막 이랬어요. 지금은 이해할 수 있겠다 싶어요, 그 심정을. 저희 어머니가 “사진이 잘 나오는데 뭐 하러 그걸 그리고 있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그 적나라한 거를 뭐 하러 그렇게 표현해야 하지?”란 질문이 되게 충격이었어요. ‘사진을 찍으면, 더 적나라한 걸 알 수 있다니… 어쩌면 나보다 더 한 수 위인가?’ 그런 생각들이 들었어요. 

     어머니께서 많은 조언을 해주셨네요?
그림을 그릴 때, 요소들을 빼고 넣고 하는 단계에 있어서 그림을 보고 여러 얘기를 해줘서 좋았어요. 

     어머님과의 미술 시간이 시작으로, 선생님께서 다른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미술 수업을 하게 되었네요.
어머니 돌아가시고 ‘이제 한번 본격적으로 해야 되겠다.’ 생각이 들어가지고. 저희 어머니가 2018년도에 돌아가셨는데, 한 2년 정도는 침체기가 있었어요. 그러다가 2020년부터 미술 수업을 시작해가지고 지금까지 왔는데…. 영주동에서 처음 할 때는 주민 공모 사업이 있었어요. 사업 취지가 좋았고, 지원금도 나와서 하게 되었어요. 영주동 아파트에 사시는 어르신들이 문화에 노출이 되지 않으신 분들이잖아요. 우리가 사는 데 급급하다 보니까, 색연필을 사는 돈은 솔직히 가욋돈이기 때문에 생각해 보지도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그런 것들을 살 수 있는 돈은 주민 공모 사업으로 해결되니까. 그래서 ‘시도를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하다 보니, 저도 좋았지만, 수업을 들으러 오시는 어르신들이 너무 행복해했던 것 같아요. 수업하면서 미술관도 방문하고. 영주동 센터에 계셨던 이전 국장님이 흔쾌히 이동 지원도 해주셔서 그런 것들이 아주 잘 이루어졌죠. ​​​​​​​
     수업은 몇 명이 함께 듣나요?
처음에는 크게, 많이 모집하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어른 한 명에 드는 힘이, 일반 학생 한 2~3명에 해당한다고 생각해서. 어르신 5~6명 정도면 일반 학생 10명을 가르치는 만큼의 힘이 들어요. 근데 하다가 보니까 수업 듣는 어르신들이 더 많이 늘어나더라고요. 조금 버겁지만 “한번 해보자.” 한 거죠. 수업하다 보면 잘하는 분들도 있고 도움이 필요한 분들도 계세요. 그럼, 잘하는 사람이 조금 못하는 사람을 도와주고. 그리고 저희 수업 듣는 분들의 연령대가 다양해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기는 느림도 이해하게 되고. 반대로 연세 드신 분은 젊은 사람들의 활기도 느끼고. 이게 윈윈하는 거라서. 이 수업이 이어지는 힘인 것 같아요.

     그림마다 저마다의 개성이 있더라고요. 보면서 깜짝 놀랐어요.
그렇죠, 너무 잘 그리죠.

     물론 각자가 가지고 있는 역량도 있겠지만, 그 표현을 드러낼 수 있게끔 도와주는 역할도 중요하잖아요. 선생님께서 잘 수업을 해주신다는 결과이기도 한 것 같아요. 그래서 영주동 센터 복도에 전시된 작품들을 보면서 ‘그림이 참 좋다.’라는 생각을 늘 하거든요.
제가 매번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림 1도 못 그려도, 걱정 안 해도 된다고. 1도 못 그리는 게 좋다고. 제가 우스갯소리를 좀 잘 내는데, 항상 수업 듣는분들께 말해요. “가르치는 거 하나는 잘합니다.”라고.

     저도 인정합니다!
그림 1도 못 그려도 오시면, 어느 날 ‘어머, 내가 그림 좀 그릴 줄 아네?’ 그런 생각 하게끔 내가 만들어준다고. “오래 앉아만 있을 수 있다면, 그림은 언제든지 가능하다. 그래서 엉덩이를 좀 오래도록 붙일 수 있는 분은 그림 1도 못 해도 전혀 걱정 없다. 오시기만 하면 된다.”고 이야기하죠. “그렇다고 그림 그리면서 죽자 살자는 하면 안 되고, 놀러 갈 데 있으면 놀러 가고, 시간 되면 출석해서 재미있게 그림 그리고 가시면 된다.” 그렇게 말하거든요. 그게 아마 연세 드신 분들의 심적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말이 되었을 것 같아요. 우리가 수업을 듣다 보면 ‘결석하면 안 되고, 매일 출석해야 되고. 안 오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부담감이 생기잖아요. 본인이 할 일이 있을 때 수업에 못 오더라도 괜찮다고 해요. 그런 부분들이 아마 그분들한테 좀 편안하게 다가갔을 것 같아요. 그래서 중간중간 빠지는 건 괜찮아요. 그런데 처음에 시작한 후로 계속 오셨던 분이 계시거든요, 노인 일자리랑 수업 시간이 겹치게 돼서 못 오게 되었어요. 그게 솔직히 좀 안타깝습니다.

     한 분만을 위해서 시간을 변경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죠. 왜냐하면 그 한 명을 위해서 또 6~7명이 옮길 수 없으니까. 그래서 그림을 그리고 싶지만, 생업 때문에 미술 수업을 오지 못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잖아요. 그분들을 위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고민 중입니다.
     어르신분들이 일상생활에서 문화를 경험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을 고민 중이시네요.
우리가 그림을 그린다는 문화가 별거 아닌 것 같지만, 한국 사회에 아마 제일 필요한 것이지 싶어요. 문화에 대해서 알게 되면, 내 삶이 풍부해집니다. 색을 칠하면서, 색을 접하면서 ‘이게 뭐지?’ 그러면서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어떤 아우라가 있어요. 춤과 같은 다른 여러 가지 장르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게 그림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그림을 시작하게 되면 ‘삶이 조금 여유롭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동안 우리 노인분들의 세대가 살아가는 데 급급했다면, 이제는 ‘즐기는 데도, 눈을 돌려보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는 영주동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이런 미술 수업은 어느 누구라도, 어느 도시에서라도 시작할 수 있어요. 저는 ‘내가 시작했으니까, 누가 이걸 똑같이 하면 안 돼!’가 아니라, 여러 곳에서 다 같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함께 시작해 주는 게 저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을 배움으로써 어르신들에게 변화가 생기셨을까요?
실력은 당연히 늘 수밖에 없습니다, 시간을 투자하기 때문에. 근데 집에 가서 그림에 대해서 고민한다는 겁니다. ‘이걸 어떻게 그리지?’, ‘오늘 꽃을 하나 그리고 갔는데, 무슨 색깔 칠하지?’ 그런 고민을 한다는 게 시작이지 싶어요. 즐거운 고민이잖아요. 그런 고민을 시작했다는 자체가 너무 좋고. 이걸 기점으로 ‘뭘 그리지?’, ‘무엇을 그리지?’를 생각한다는 거, 그게 아마 제일 큰 변화이지 싶어요.

     어르신들이 자신이 그릴 그림에 대해서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이 그분들에게 즐거움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하시네요. 그런 고민을 하시는 어르신들 모습을 보면 어때요?
오랫동안 수업을 했는데도, 수업 하러 오기 전날은 뭘 어떻게 해야 좀 더 쉽게 가르칠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사실 제가 전시회 같은 자리에 열심히 안 다녔는데, 이제는 열심히 가요. 그리고 예전에는 리플렛 같은 것도 절대 안 챙겨왔는데, 지금은 리플렛을 잔뜩 품에 안고 오고. 이런 부분들이 또다시 수업에 도움 되고 연결되고. 서로의 그림을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모습들도 보여요. 그럼, 저도 즐거워요. ​​​​​​​
     배우는 분이나 가르치는 분이나 서로에게 즐거움이네요?
그렇죠. 즐거움은 우리가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거잖아요. 저도 이제 나이가 들다 보니까 ‘이 활동을 하길 너무 잘했다.’ 싶고. 이제는 내가 그동안 받았던 것들을 다시 돌려줄 수 있는 시간이 되는 게 제일 좋습니다. 그림을 많이 팔아서 경제적으로 기부도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고 내가 가진 재능을 기부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또 쉽게 할 수 없는 것이고, 재능을 기부한다는 거는 어떤 믿음 같은 것들이 있어야지만 가능하지 싶어요. 수업을 지속해 나갈 수 있는 믿음을 끌어내는 데는 수업 오시는 수강생분들의 힘도 작용하지 않았나 싶어요. 그게 제일 큰 힘인 것 같아요.

     주민 공모 사업과 같은 지원사업을 통해 프로그램을 운영해 오셨잖아요. 지원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 고민을 해보셨나요?
지원을 받아서 이렇게 했죠. 만일에 주민 공모 사업이나 시 지원이 없을 때는 프로그램이 정말 순수한 재능 기부로 이뤄져야 해요. 그림은 꾸준히 그려야 해요. 그림이라는 게 어렵기도 하니까. 연세 드신 분들은 그림을 잠시 멈췄다가, 다시 시작하기엔 어려울 듯 싶어요. 그래서 그런 공백이 생길 때에는 무조건 하고 제가 재능 기부한다 생각하고 꾸준히 해야죠.

     내년에 지원이 끊기는 걸로 알고 있어요. 지원이 끊어지면 온전히 재능기부 형식으로 하신다는 건가요?
하려고 합니다. 제 생각은 동아리 형태로 만들어서 계속하실 분들은 영주동에서 꾸준히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해요. 그리고 계속하실 분 중에서 화실 쪽으로 오실 수 있으면, 화실에서 하고. 저희는 장소만 제공된다면, 지속적으로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장소를 확보하는 데 조금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러 군데 알아는 보고 있습니다.

     내년을 대비해야겠네요?
미리 해놔야죠.

     화실도 가지고 계시지만, 화실은 개인적인 공간이기도 하니 외부 활동이 가능한 장소가 제공만 된다면 가장 좋겠네요?
그러면 최고 좋죠. 왜냐하면 그림만큼 인간의 감정을 변화시키고 풍부하게 해주는 거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림 한 점. 그 한 점이 인생을 변화하게 해주는 것이라서. 어디든지 저를 필요로 한다면 달려가겠고, 달려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림 그리신 지는 몇 년 정도 되셨어요?
30년이 넘죠, 한 40년 정도 되네요. 그림 인생은 40년 조금 넘지 싶어요.

     가르친다는 게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인데, 영주동까지 오셔서 그림 수업을 하시고. 작가와 선생으로서의 고민이 끊임없겠네요.
작가는 잠시 내려놨습니다. 수업이 그만큼 힘들더군요.
     그림을 통해 다른 분들이 작가로서의 활동을 하실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계신 것 같아요. 수업 들으시는 어르신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자리가 몇몇 있었다고 알고 있어요. 그때 작품도 팔렸었다고요?
예, 맞아요. 저희 어르신분들의 작품들이 전시회를 통해서 판매되는 놀라운 일들이 있었죠. 그림을 보러 와서 구입 안 해도 되는데, 생판 모르는 분들이 그림을 구입해 주셔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구나!’ 싶었어요. 수강생분들에게 이런 재미를 느끼게 해줄 수 있어 기뻤어요. 이런 일들 속에서 저도 그림을 가르치는 재미를 또 한 번 발견할 수 있었어요. 

     수강을 들으셨던 어르신들도 본인이 그린 그림이 팔릴 거라고는 전혀 상상을 못 하셨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요. 또 제가 기뻤던 일이 한 번 더 있었어요. 벡스코에서 열리는 박람회에서 ‘100세 인생 그림책’ 부스를 운영했어요. 이때 부스에서 그림 작품들을 전시했어요. 이제 박람회 초대장이 나오니까 어르신분들께 나눠드리며 ‘가족분들께 그림 그린 거 구경하러 오라고 전달해 드리세요.’ 했어요. 이제 박람회장에 가족들이 몇 분 오시기 시작하는데, 어떤 분은 아드님한테 꽃다발을 받은 거야. 그분이 그랬어요.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따라왔을 뿐인데. 내가 그림을 그려서 전시라는 것도 하고. 그리고 내 아들이랑 며느리, 손주가 꽃다발을 들고 들어오는데 그때 너무 감동받았다”고. 

     종종 이런 자리를 만들어야겠어요.
작년에는 4번의 전시회를 했어요. 어르신들이 작가처럼 바쁘죠.

     전시회를 하면서 어르신들도 더 많은 즐거움을 느끼셨을 것 같아요.
맞아요. 시작은 미비했지만 “우리가 작가로서도 데뷔할 수 있다”고 어르신들께 말해요. 작가가 그렇잖아요. 전문 작가도 있고, 아마추어 작가도 있고. 그래서 작가로 등단할 수 있다는 희망을 드릴 수 있었던 게 그게 아마 좋았던 것 같아요.

     활동하면서 서로의 즐거움이 있는 만큼, 어르신들과 함께 활동하는 시간이 선생님께도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 같아요. 활동이 꼭 지속적으로 이뤄져서 작가분들이 여럿 발굴되면 좋겠네요.
예, 저의 바람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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