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에서 남태평양, 국제시장까지 주름잡았던 시절… 있었지!”
■ Editor  □ 공구 할아버지
■ 할아버지 사진 좀 찍으면서 얘기 나눠도 돼요?

□ 얘기하지. 뭐 얘기하겠나.

■ 그냥 할아버지 사는 얘기. 할아버지 이렇게 작업하고 계신 거.

□ 할아버지야 뭐 할 얘기가 많지.

■ 네, 그런 거 들려주시면 돼요. 할아버지 영주동에 언제부터 사셨어요?

□ 할아버지 나이가 팔십 여섯인데. 근데 그게 어디다가 내는긴고? 그게 뭐 영주동 신문 그거?

■ 아니요, 우리 책! 

□ 무슨 책이고?

■ 우리 영주동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그리고 우리 나이 친구들 이야기. 사진 찍고 전시도 하고, 책으로도 내고요. 

□ 인물이나 잘났으면 몰라. 못났는데...

■ 아니. 내 봤을 땐 인물 상관없이 우선 지금 하는 게 멋져서.

□ 지금 찍으면 되지. 지금 찍어.
■ 네. 천천히 찍을라고. 그래서 할아버지 영주동 언제 오셨어요?

□ ​​영주동? 한 40년 정도 되겠네.

■ 어떻게 오게 됐어요?

□ 살라고 왔지. 할아버지 고향은 원래 경남 창원이라 하는데야. 거가 내 안태본이고. 
내가 개발한 거 쓰고 있는 사람도 많아요. 지금도 쓰고 있어, 전자계통이니까. 내가 광복동에서 옛날에 오디오 전축도 생산을 했고 전자제품 안 한 것도 없고. 내가 금성사에서 전자했으니까, 뻔한거 아니가.(망치질) 조금만 실수하면, 1미리도 실수하면 안돼 이게.

■ 그러면 할아버지 영주아파트 사시잖아요. 여긴 언제 이사왔어요? 여기 가족들이랑 같이 이사왔어요? 

□ 아니지. 맨 처음에는 결혼을 해가지고 할아버지는 해병대에서 제대하고 뭐를 해볼라고 하니까 잘 되는 것도 없고, 그래서 원양어업도 나갔고. 남태평양에서는 좋은 일도 더러 있었지. 흑인들이 참 인정이 많아요. 남태평양 피지, 영국, 불란서 쪽에 섬에 그 사람들하고 일도 하고 그래했지. 
나이가 있으니까 이제 내가 벌이를 할 수 있나. 심심하니까 지금 내가 앉아서 뭐하겠어요. 가만히 집에만 있으면 치매 걸리고 안되거든. 그러니까 이제 이런저런 장난하지. 이게 일종의 장난인거지, 나한테는. 전자하는 사람들 있으면 기계도 빌려주고. 

■ 지금 뭐 만들고 있는 거에요? 

□ 지금은 이런 거를 만드는데. 이게 뭐냐하면은 요즘에 비디오 촬영하고 할 적에 자동시스템.

■ 어 나 그거 아는데 슬라이더

□ 그래, 슬라이더. 잘 아네. 이거는 뭐냐 하면 여기 인자 장전해가지고 리모콘해가지고 왔다가 가는 거 알제, 리모콘의 일종인건데 주로 이런 것들을 장난하는기라. 조금 더 나은 거를 개발해보고.
고 다음에 이거는, 요게 돈이 많이 드는 거여. 간단하게 생각하지만은 이런 원리도 있단 말이야. 여기 딱 넣어가지고 양쪽에 쪼아서 길이를 재서 자르는기라. 옛날에는 이런 게 없었어.

■ 할아버지가 새로 만든거네요?

□ 전부 다 이래 응용해가지고. 이래하기가 겁이나요. 누가 하나 들고 가면 따라나와. 보고 사진 찍어가지고 다 장난치고. 이래가 재산도 많이 날리고… 

■ 끊임없이 나오네, 그쵸?

□ 이것도 역시나 그런 원리라. 이게, 아가씨들 오니까 떨리는갑다 내가.(웃음) 요런 거는 구멍 뚫을 때 하는기고. 이거는 내가 하던 찌끄레기라. 그냥 이렇게 살아가는기라.

■ 할아버지 이런 거 시작한 지는 몇 년 됐어요?

□ 원래가 내가 전자공학 출신이니까 햇수가 65년 되지. 이게 전부 다 전자, 응용이거든. 그러고 수학 계산을 할 줄 모르면은... 예를 들어서 요게 영어로 말해서 resist, 저항인데 요즘은 이런 거를 돈을 주고 사니까 모르지. 근데 우리 같은 할아버지는 전자기술자이기 때문에 요거는 몇 암페언데, 몇 볼트 해서 충전시켜야한다 자동으로 계산을 다하지. 최하적분을 알아야되고 루트는 기본적으로 해야되고.

■ 와 복잡하다.

□ ​​​​​​​조선공사 있을 적에도 일하고 집에 오면 여기서 세월 보내고 이랬는데, 내가 도배사, 보일러, 전기기사 고 다음에 통신사... 자격증이 많아 나한테. 또 특허 같은 거도 많이 내고.
그 전에 옥상에 보면 테레비 안테나 안 있나, 옛날에는 할아버지가 그거 많이 만들었다. 나이가 든 사람들은 잘 알지. 공중파가 산에서 나오면 저기서 복사파가 또 나와, 그 때문에 테레비에 사람 얼굴이 두 세 개가 나와요. 그런 것 가지고 고생도 하고 연구도 하고 안 해본 게 없지. 
■ 그러면은 할아버지 여기 이사오고 직장 다니면서 이 공간을 만든 거네요?

□ 음, 그렇지. 조선공사 일하다가, 저 국제시장에 국술원이라는 체육관이 있는데 내가 그서 조그만한 가게를 채려가지고 전자제품 생산해서 납품도 하고 그래 했어. 

■ 그러니까 할아버지 가게? 직접 사장했네요?

□ 응, 내 가게. 내가 사장달고. 그런데 이게 돈이 참 희한하게도, 내가 느낀 게 있어요. 사업가하고 엔지니어하고 달라요. 엔지니어는 절대 사업가가 못돼요. 기술자는 돈 못 벌어, 맨날 이용만 당해요. 나도 바보짓 많이 했어요. 
뭐 막걸리 한잔하자 해서 우째 얘기하다보면 “회로 좀 그리대” (회로 좀 그려줘) 하고, 내가 설계해서 반 제품만 만들어 주는거지. 반, 반만 만들어주면 즈그가 또 조립해가 팔아묵고. 그러니까 나는 완전한 생산을 못해. 왜냐하면 완전한 생산을 할라하면 허가를 받아야돼. 그렇기 때문에 마...

■ 영주동에 사는 거는 재밌어요?

□ 영주동 사는 거. 이래 돈 없이 사는 사람은 좋다.

■ 왜왜?

□ 서민아파트 아니가 여기가. 근데 교통이 불편해서 파이라.

■ 옛날엔 여기 돈 많은 사람들 많이 살았다면서요?

□ 옛날에는 영주아파트 이게 대한민국에서 처음 생겼다아이가. 요고 생기고 저 우에 산에 시민아파트 생겼거든.

■ 여기 오르막이 심한데 할아버지 다 왔다갔다 하세요?

□ 내가? 일이 없을 때는 요 탑마트인가 거 가서 반찬도 사오고 국제시장 가고 남포동 주름잡지. 왜냐하면 남포동에 지하상가 안 있나. 그 지하서 인자 미화반장을 내가 6년 했거든. 할아버지 안 핸거 없다. 

■ 안 한거 없으시네요, 진짜. 

□ 지금은 영주동 복지관 분관이라고 그서 인자 도시락 배달한다 아이가.

■ 도시락 배달하고 돈도 받고.

□ 그 전에는 보수동 안 있나, 책방 골목 그 복지관. 그서 한 5년 하고, 요번에 이쪽으로 인자 갈랐다아이가.(분관되었다는 뜻)

■ 가까우니까 좋겠네. 여기 같이 사는 사람들은 다 재밌어요? 다 좋아요?

□ 아이 그럼. 이웃사랑해야 되는데. 예를 들어서 빵 한쪼가리라도 사오게 되면 갈라먹고. 즈그도 아이스크림이나 하나 사가 올 때면 갈라묵고. 주로 그래 살아가.

■ 가족 같겠네요?

□ 응, 가족 같아. 요 우리 세 집은 가족이야, 다. 그라고 남자는 내 하나밖에 없거든. 전깃불 안 오면 내가 봐주고 뭐 수도 계량기 해주고... 다 그래해.

■ 본 지는 몇 년 됐어요? 다 같이 알게된 지는 몇 년 됐어요?

□ ​​​​​​​한 45년 되겠네, 이사올 때부터 다. 요 밑에 젊은 여자분이 사는데 내가 빨래줄을 다 매주고 이렇게. 다 이웃사랑 아니가, 왜냐하면 딸 같고 손녀 같고 그러니까.
■ 할아버지 옥상 이쁘던데 옥상에서 경치 구경하면서 좋은 데 또 있어요? 

□ 여 오면 더 좋지. (옥상 가장자리 쪽으로 걸어가서) 여서 불꽃놀이하면 보인다.

■ 불꽃? 무슨 불꽃?

□ 텍사스(거리) 저서 불꽃도 보이고 그래. 요 봐라, 코모도 보이고, 부산 시내가 눈 밑에 안 있나 전부. 사람들이 사진 많이 찍어가, 얼마나 좋노. 저 디오 카페(역사의 디오라마¹)있제, 올라가서 한바쿠 돌면 옥상 안 있나. 저기서 사람들이 비디오 촬영하고…

■ 할아버지 여기 산책 자주 해요? 이렇게 디오라마 타고 민주공원에 가서 한바퀴 돌고?

□ ​​​​​​​그렇지. 옛날에는 하루 한 번 슥 갔는데. 요새는 잘 안 가지. 다리도 아프고, 잘 안 가지. 
■ 사진 할아버지 어떻게 찍어드릴까요? 이래 찍는 게 이쁠라나? 

□ 배경이 있어야지. 여서 찍어보자. 해를 등지면 안되는데... 내가 이쪽으로 서야지. 마 이래 찍으면 되지 않나. 

■ 너무 예뻐요, 오 멋있다. 할아버지 조금만 웃어줄까요? 할머니 생각하면 웃음 안 나와요. 손자 생각하면?

□ 웃음 나오지. 할아버지 모델이네.(웃음) 근데 책 나오면 동네 사람들 욕할 거 아니가. 

■ 왜요?

□ 사진보면 시커머이 이 못난 사람.

■ 에이, 뭔소리야. 멋있어하죠. 이 공구 얘기도 보고 하면은. 계속 여기 사실 거죠?

□ 우리 할머니가 다리가 아프고 허리를 못 쓰니까, 계단이 없는 데로 이사가는 게 사실 내 소원인데. 그게 그래. 물질이, 돈이 안 그래요. 나도 그렇고, 나도 이제 나이가 드니까 다리가 아프거든. 안 아플 수가 없지. 아니 이게 기계인데, 86년이나 썼으면 많이 썼지. 다 갈 때 됐지... 

■ 할아버지 안 해본 거 없이 많이 해보셨는데 이제 영주동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싶어요? 

□ 이제 생명있을 때까지는 다리나 안 아프게. 오늘도 그거 암검사 하라고 왔대. 아직까지 나는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내가 모르고 살다가 죽어야지. 알고 살면 안돼. 이래 살다가 죽는 기지. 

■ 그럼 그냥 여기서 할머니랑 이렇게 이웃사랑하면서?

□ 사랑하면서. 만날 보고 얘기나 하고 다투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안 되면 교회가서 예배나 드리고. 인제 빨리 가이소. 

■ 가아죠, 이제.

□ 너무 오래 있었다. 

■ 감사해요. 할아버지. 

□ ​​​​​​​할아버지가 심심하니까 이리 올라와가지고 하지. 안그러면 뭐하겠노.

1. 역사의 디오라마
부산의 해양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로, 영주동 산복도로 위 민주공원과 중앙공원으로 오르는 삼거리에 위치한다. 중구와 동구의 산복도로 풍경부터 멀리는 부산항대교와 영도까지 탁 트인 부산 전경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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