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이라고 하길래, 어떤 곳의 회장님이지 엄청 궁금했거든요. 경로당 회장님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언제부터 회장 직책을 맡게 되신 거예요?
2016년 8월 달부터 했지 싶다.
생각보다 엄청 오래되진 않으셨네요.
지금 2024년도잖아, 오래된 거야.
어쩌다 경로당에서 회장 직책을 맡게 되신 거예요?
내가 중앙동에서 장사를 했는데, 다리가 너무 아팠어. 그래서 양쪽 다리에다 수술하고 일을 그만뒀거든. 우연히 내 잘 아는 정점술이라는 사람이 경로당 회장하고 있더라고. 정점술이 회장하고 내하고는 중구 종친회에 있어. 정씨 종친회 하면서 내하고 이제 좀 친하게 지내지. 그분이 하도 놀러 오라 해서 내가 놀러 왔거든. 그런데 와서 보니까 총무가 장부 정리를 못 해서 한 삼십몇만 원 정도 돈 착오가 있어. 그렇다 보니까 정점술이 내보고 무조건 하래 총무. 그래서 총무 하기로 했어. 총무는 한 1년쯤 했어.
총무로 시작했다가 회장으로 승진하신 거네요!
한 1년쯤 총무 했는데, 내 전 회장님인 정점술 회장님이 간이 굳는 병에 걸려 갖고 회장 일을 못 했어. 그래서 2017년도부터 정식으로 맡았지. 총무 하면서도 계속 회장 하라는 거 거부하면서 회장직 도피를 한 1년 가까이 했는데도. 그래서 내가 총무 겸 회장 겸 심부름 겸 온갖 것 다 했지. 그렇게 그때부터 쭉 여태까지 다니는 거지, 이제. 누가 지시 해라 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도 할 사람이 없어서 하는 거지. 여태까지 내가 그만둔다고 많이 이야기했어. 했는데도 할 사람이 없어서 여태하고 있는 거야.
언제까지 하실 생각이세요?
언제든지. 통솔력 있는 사람 오면 넘가줘야지. 언제든지 나는 준비는 다 돼 있으니까.
어떤 후임자가 나타나면 좋으실 것 같아요?
젊은 사람 오면 가르쳐 가면서 하면 되는데, 80대 초반 정도 오면 좋을 것 같아. 요새 70대는 경로당에 안 올라하니까.
왜 그럴까요?
‘아직 경로당 갈 나이 아이다.’라고 생각해.
경로당은 몇 살부터 올 수 있어요?
65세부터 경로당 올 나이인데. 요즘은 젊어지니까 80세 돼서야 오기 시작해. 그런데 밖에서 있는 것보다 좋아. 여름엔 에어컨 틀어놓고 밥도 해 먹고 좋아. 그리고 여기가 사람 제일 많다. 중구에서 경로당이 31군데 있는데 우리는 40명이 넘어. 다른데 가면 15명, 20명 그리고 7, 8명만 있는 데도 있고 이래.
경로당에 오는 사람들도 많아야 지원도 계속해서 들어오는 거죠?
그런 부분이 있지. 구청에서 감사를 일 년에 두 번 정도 하거든. 회원 수가 적으면 운영비가 적게 나오지. 그래도 우리는 운영비 최고 많이 받지. 중구에서는.
회원 수가 제일 많으니까요.
운영비도 최고 많이 받고, 지원 혜택도 최고 많이 받고.
이곳 경로당에는 영주동 사는 분들만 올 수 있죠.
그렇지. 영주동 사는 사람. 영주1, 2동 상관없고.
영주 1, 2동 사람들이 갈 수 있는 경로당은 이곳 뿐이에요?
1동 경로당이 동사무소 옆에 하나 생겼어. 여기 오던 사람들이 고바위 올라오기 힘드니까 그기로 많이 갔어. 요 옆 아파트에도 경로당이 쪼매낳게 생겨서 그쪽으로도 많이 가버렸고.
과거에 비해 회원 수도 많이 줄어들었겠어요.
줄었지. 2016년도에는 60명 밥을 할 정도였어. 방에서 다 못 먹어 갖고, 복도에서 밥 먹고 이랬어. 그때는 1년에 두 번씩 놀러도 가고 그랬고. 우리 회원들 40명서 놀러 가고 이랬거든. 지금은 놀러 가려 해도 갈 사람이 없어.
그래도 오늘 경로당에서 프로그램 하나 한다면서요.
요리 프로그램이야. 이렇게 프로그램하면 30명 이상 오려고 하는데, 중복 참여 할 수 없게 로테이션한다. 한번 참여했던 사람들은 중복 참여는 안 되고, 번갈아 가면서 참여할 수 있도록 조정해.
공정한데요.
그래 해야지. 그래 안 하면 욕 들어.
다들 참여하려는 열정이 많으신가 봐요.
오면 즐겁고 맛있는 거 먹고 이러거든. 혼자 사시는 할매들 집에 가봐야 혼자 무슨 밥을 하겠어. 여기 오면 이야기도 하고, 밥도 먹고 이러는 데 좋잖아. 그러니까 계속하려 해.
그래도 회장님이 잘하고 계시니까 서로 마음도 안 상하고, 꾸준히 프로그램 운영이 되나 봐요. 회장님은 지금 보이는 것보다 연세가 많다고 제가 들었거든요. 80대시라고.
42년생이니까 높지.
42년생으로는 안 보이셔서, 사람들이 계속 시키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정정하시니까 ‘계속할 수 있겠지.’하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요?
그래서 할 수 있는 것 같아.
회장직을 맡기 전에 장사하셨다고 하셨는데, 중앙동에서 무슨 장사를 하신 거예요?
중앙동에서 고물상을 크게 했지. 대한항공 사무실 맞은편에서 한 30년 가까이했을걸. 지금 중앙동 우체국 자리에서 했어. 처음에는 돈 잘 벌렸지. 우리 가게에서 구르마 끌고 다니는 사람들 많을 때는 한 30명씩 됐어.
많은 사람들과 일하는데, 힘들진 않으셨어요?
고물상에는 나쁜 놈들 좋은 놈들 별놈들이 다 오거든. 특히, 80년대 70년대는 은신처라고도 불렸어. 사고 내고 고물상에서 파묻혀서 일하면 잘 못 찾거든. 그래서 중구 경찰서에서도 매일 인원 점검하러 왔어. 그리고 사고 발생하면 사진 들고 와갖고 물어보고. 그럼 협조해 주고 그렇지.
계속 여기 부근에서 계셨던 거예요?
크게 장사할 때는 중앙동에서 했고, 그전에는 초랑에 있었어. 옛날에 80년대는 박카스 공병을 세척해서 동아제약회사에 납품하고 이랬어. 병을 하나 부는데 돈이 너무 비싸게 치었거든.
사람들이 먹은 병을 일일이 다 씻으신 거죠?
씻어서 납품했어. 한 병에 1원 정도는 남았을 거야. 그랬으니까 조금 유지를 했지. 근데 해보니까 큰 돈은 못 벌어. 그러던 중 대구에 있는 내 친구가 고물상을 하는데, 한번 오라고 하더라고. 가보니까 쇳덩어리만 취급하는데, 이익금이 무시 못 하는 거라. 그래서 나도 내려와서 공병은 때려치우고, 중앙동에서 종이하고 고철 장사한 거야. 그때 중앙동에 무역회관이 있어서 집들이 하나도 없고, 큰 트럭들 주차장만 있는 허허벌판이었어.
지금의 부산 세관 쪽인가 보네요.
내가 오면서부터 건물 하나씩 짓더라고. 이때 고철 쇳덩어리가 엄청 많이 나왔어. 그때부터 크게 할 수 있었어. 그런데 내 다리가 아파지면서 그만뒀지. 당시에 무거운 것들 들고 하니까 관절이 빨리 안 좋아지더라고. 80대 초반에 그만뒀나? 70대 초반에 그만뒀네.
지금 자전거 타고 다니시잖아요, 다리는 괜찮아지신 거예요?
수술하고 많이 좋아졌어.
수술을 하고 나서 자전거를 사신 거예요?
타고 다니는 자전거는 우리 작은 사위가 내 생일 때 사줬어. 내가 맨날 일한다고 시달리고 있으니까, 아침에 운동하라고 저걸 하나 사주더라고. 70만 원 주고 샀다는데 최고야. 자전거 처음에 샀을 때는 지금보다 더 상태가 좋았어. 27단 기어인데 자전거도 오래 써놓으니까 점점 안 좋아져.
자전거는 몇 년 됐어요?
저 친구는 지금 23살 됐지. 내하고 같이 늙어가.
어떻게 이렇게 오래 자전거를 타실 수 있는 거예요?
내가 간수를 잘했지. 닦고, 조이고, 탈 나면 고치고, 수리하고. 한 20년 이상 써놓으니까, 나하고 너무 정이 들어서, 인자는 내한테 딱 맞지. 어디서 탈 났다 하면 대방 알지.
다른 자전거 못 타시겠어요.
다른 것도 타기는 타지만, 그래도 저게 제일 만만하지. 내한테 딱 내 몸에 딱 맞으니까.
자전거 타고 다니는 코스가 있어요?
여기서 송도까지 아침에 딱 30분이라. 왕복 1시간. 여름에는 아침에 가서 수영 좀 하고. 요새 해수욕복 딱 입고 가거든.
몇 시에 출발하세요?
내가 오늘 아침에는 4시 50분에 갔네. 도착하니까 5시 20분쯤 됐어. 5시 20분이어도 어디서 사람들이 오는지 차 댈 데가 없어, 어찌 복잡하던지. 오늘 나는 이거 한다고 바닷속에 못 들어가고, 그냥 올라왔지.
항상 송도 가서 바다 수영하며, 하루를 시작하네요.
8시까지 송도 다녀와서 노인 일자리 일하러 가. 돈벌이해야지.
노인 일자리 매일 가세요?
일주일에 세 번, 월수금.
어떤 일 하세요?
길거리 담배꽁초 줍는 거 관리하지. 우리 함께 하는 사람들이 12명이거든. 그래서 내가 12명 관리해. 그거 하고 인자 경로당에 와서 내 할 거 하고. 또 다른 거 일 있으면 다른 거 일 하고.
경로당 일은 많나요?
구청이나 외부에서 오면 손님 접대하고. 국민보험공단에서 운동 일주일에 두 번 있거든. 월, 수 아침에. 그리고 월요일은 오후 1시 반부터 라인 댄스도 하고.
다양한 활동을 하네요.
많이 하래. 근데 전에는 일주일에 다섯 번 다 했어. 월화수목금. 그런데 사람들이 안 할라 해. 나이가 있으니까. 아파트 단지 같으면 사람들이 쪼르르 내려와서 운동하고 가면 되는데, 여기는 거리가 다 멀어. 주 5일 맨날 내려왔다, 올라가야하니까 힘들지. 여기가 평지도 아니고, 오르막길이 돼놔서 안 올라 해. 그래서 내가 주 4회 해봤는데도, 사람이 많이 참여를 못 해.
오시는 분들은 프로그램마다 달라지는 거죠?
돌아가면서 오죠. 매일 오는 사람도 있고, 또 한 번씩 오는 사람도 있고.
회장님은 매일 오시잖아요.
나는 매일 출근이지. 내가 빠지면 안 돼. 일요일 하루는 내 볼 일 보러 가고. 일요일 하루만 쉬는 거예요. 물론 내가 나오기 싫으면 안 나와도 돼. 안 나와도 되지만, 그래도 내가 책임자니까. 있으면 회원들이 좀 든든해하지.
고물상 장사하실 때보다 더 바쁘시겠어요. 회장님 고향은 부산이세요?
청도에서 태어나서 학교는 대구에서 다녔고.
어쩌다 부산으로 내려오셨어요?
큰 형님 따라 부산에 내려왔어. 부산 내려와서 일을 해야겠더라고. 부산에 처음 내려와서는 고생 엄청나게 했지.
부산 내려와서 처음부터 이 근방에서 거주하신 거예요?
범일동에서 일을 시작했다가, 영주동으로 넘어왔어.
영주동에서는 언제부터 사신 거예요?
우리 애들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왔어. 큰애는 범일동 성남초등학교 나왔는데, 둘이는 영주동 오면서 봉래초등학교 다녔어.
영주동에서 사신지도 엄청 오래되셨네요.
그럼. 막내가 44살이니까.
왜 영주동에 정착하신 거예요?
그때는 영주동이 살기가 좋았어. 부두도 바로 앞에 쫙 있었고. 장사해 가 먹고, 살기는 참 좋았어. 그리고 영주동에 사람도 많이 살았고. 영주아파트 17평인가, 14평에 두 가구 살았다니까. 가보면 방 두 개고 부엌 하나인데, 한 가구를 세놓고 살았다고 하니. 그만큼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는 거지. 영주시장만 다녀봐도 어깨가 많이 부딪히고 했다더라고.
회장님은 정확히 어느 쪽에서 사셨어요?
길 건너 중구청으로 올라가는 빌라촌. 거기에도 사람들 많이 살았어. 나 같은 경우에는 식구가 많으니까 방 2개짜리에 우리가 살고. 그런데 밑에 층에는 방 두 개인데도 세 가구가 살았어.
영주동에 사시면서 동네 사람들과는 많이 알고 지내셨어요?
내가 장사하다 보니, 아침 일찍 내려가고 저녁 늦게 올라오거든. 그래서 동네 주변 사람들은 잘 몰랐어.
그럼 경로당 오게 되면서, 많이 알게 되신 거네요.
그렇지. 그전에는 아침에 바빴어. 고물상에서 청소차 물건을 좀 받았거든.
이른 새벽이지 않아요?
청소차 첫 차 들어오는 게 3시 반 되면 와, 새벽에. 청소차가 종이랑 이것저것 모아 갖고 오면 그거 받을라고 새벽에 일찍 내려가서 준비해야 해. 새벽 2시 반에도 내려가고, 3시에도 내려가고 그래. 저녁에는 늦게 6시 돼야 끝나니까, 해가 넘어가야 집으로 들어갔지.
그 일은 몇 년도까지 하신 거예요?
2013년도까지 했는가 보다. 이래 오래 했다 참.
이야기 들어보니, 쉬지 않고 일하시는 것 같아요. 언제까지 일하실 거예요?
힘닿는 데까지 할 거야. 이전에는 내가 자전거 타고 송도 가면 20분, 25분 만에 갔는데. 작년부터는 28분 걸리더라고. 그리고 오늘 아침에 딱 시간 재서 가니까 31분 걸리더라고. 그만큼 다리에 힘이 빠졌다는 거지. 이제 나이가 있으니까. 내년에는 몇 분 걸릴지는 모르겠어.
내년에도 계속 자전거 타실 생각이네요.
힘 날 때까지는 탈거다.
조심히 자전거 타셔야 해요. 그럼, 경로당 앞에서 자전거 타고 내려가시는 모습 사진 찍어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