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참 밝아요, 우리 각자 소개해 볼까요?
정서은  저는 영주동에 살고 있는 고등학생 정서은이라고 합니다.
정서우  저는 영주동에 살고 있는 중학생 정서우라고 합니다.
정서윤  저는 초등학생 정서윤입니다.
손송희  저는 영주동에 올해 딱 10년 차 살고 있고, 새 정권 나이로 44살 손송희라고 합니다. 

     고향은 어디세요?
손송희  저는 경남 진주 출생이에요. 진주에서 직장생활하고, 신랑은 부산에서 직장생활했어요. 첫째, 둘째까지는 주말부부를 했거든요. 근데 셋째가 태어나고 나서, 저희 친정엄마가 “딸을 또 낳았네?” 그리고 “딸 셋은 못 키워준다.”더라고요. 나이도 있고, 힘도 더 들어가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리고 딸이 주말부부만 계속하기에는 안쓰러워 보였던 거겠죠.  

     여러 이유가 있었네요. 딸 셋은 못 키운다고 한 친정엄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손송희  저는 남동생이 있는데, 남동생도 딸만 하나 있거든요. 걔네는 MZ세대다 보니까 애를 안 낳으려 하다가 한 명만 낳은 거예요. 그리고 “이제 더 이상은 안 놓겠다.”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엄마로서는 손주가 이제 딸밖에 없는 거잖아. 여자 아이들만 있는 상황이다 보니까 화가 나신 거지. 옛날 마인드로 “나도 아들 하나 키워보고 싶었는데….” 근데 지금 되게 좋아하세요. 특히 “막내 안 낳으면 어쩔 뻔했냐.”고 그래요. 저도 솔직히 제가 딸을 셋이나 낳을 줄도 몰랐고. 많이 낳아봤자 이제 둘째 정도까지만 생각했는데. 우연히 찾아온 아이를 반갑게 맞았더니 행복해요. 막내는 정말 해맑아요. 걱정이 없는 아이예요. 시험을 못 봐도 걱정이 없고, 친구랑 학교가 제일 좋은 아이.

     그렇게 부산으로 오시게 된 거네요. 
손송희  이제 애들도 “아빠랑 같이 살고 해야지.”라고 해서 2014년도에 왔어요. 그리고 첫째가 다음 해 15년도에 초등학교를 들어가야 했거든요. 살림 합치자 해서 부산으로 왔는데, 시댁이 초량이거든요. 그러다 보니 신랑이 초량이랑 별로 멀지 않은 곳에 이제 가고 싶어 하더라고요. 그나마 영주동은 중구고, 초량은 동구라 구가 다르잖아요. 그게 진짜 큰 의미가 부여되더라고요. 그래서 중구 영주동으로 왔어요.​​​​​​​​​​​​​​
     그렇게 중구를 택하게 되었네요.
손송희  시댁을 싫어하는 건 아니에요. 어머님도 좋으셔서 사이도 좋아요. 그래도 지인들 말로는 가까이 있는 것과는 느낌이 다르다 하더라고요. 그래서 동구와 제일 가까운 중구로 이사를 왔어요. 처음 중구 올 땐 잠깐 3-4년 살고 이사 갈 생각이었어요, 학군 때문에. 그런데 이게 또 쉽지가 않더라고요.

     어떤 이유로 계속 영주동에 계신 걸까요?
손송희  제가 부산 사람도 아니고, 진주에서 왔잖아요. 처음엔 아는 사람도 없었는데 첫 거주지를 딱 잡고 보니까 인맥이 생기더라고요. 그러다 보니까 ‘내가 또 다른 지역에 가면, 이렇게까지 잘 정착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처음 와서도 조금 힘들긴 했으니까요. 연고도 없고, 친구들도 없고. 그랬는데 결국 영주동에 잘 정착해서 이렇게 쭉 계속 있게 된 거예요. 나중엔 첫째가 “이 집 나줘. 난 여기서 살래.”라고 말하더라고요. ​​​​​​​

     왜 영주동이 좋은 거예요?
정서은  어릴 때부터 계속 살던 동네고, 우리 집 안락하니 너무 좋아요. 나중에 커서도 계속 이 동네 근처에서 살게 될 것 같아서, 그냥 장난식으로 이 집 나 달라고 했어요. 
손송희  생각해 보면 불편한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일단 갖출 거 다 있고. 관공서든, 도서관이든, 공원이든. 이번에 천수 공원 생긴 것도 너무 좋고, 병원도 가깝고. 부산은 시내라는 말을 쓰나요? 서면이나 남포동 같은 번화가에 나가기도 쉽고 되게 교통이 편한 위치인 것 같아요. 

     첫째는 영주동에서 삶이 너무 만족스럽고, 둘째, 셋째는 집 욕심 없어요?
정서우  저도 언니와 같아요. 

     언니랑 살고 싶은 거예요? 아니면 영주동에서 살고 싶은 거예요?
정서윤  둘 다요.

     사이가 되게 좋네요.
손송희  일단은 아직은 그런 것 같아요.
정서은  나는 싫은데….
     셋째는 영주동이 왜 좋아요?
정서윤  짱이에요. 뭔가가 굉장히 좋아. 그냥 좋아.

     아이들의 유년 시절 기억은 영주동에서 시작하겠죠?
손송희  그렇죠, 첫째는 7살에 왔으니까. 어린이집 다니던 시절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등하교시켰던 기억만 있으니까요. 솔직히 고향으로 따지자면, 얘네들은 부산인 것 같아요.

     딸 셋 데리고 부산에서 사는 게 힘들진 않으셨어요? 아무래도 진주보단 인구도 많고 복잡하니까요.
손송희  전시회를 가든, 관람을 가든 혼자서는 못 가요. 왜냐하면 셋을 챙겨야 하니까. 지금은 서은이가 커서 “동생들 좀 어떻게 해줘.”, “봐줘.”. 서우한테도 “윤이를 어떻게 해.”, “서로 챙기자.”, “오늘 둘이 짝지니까 서로 무조건 챙기고, 같이 화장실 가는 거야.” 말이 되는 거죠. 그런데 어렸을 적에는 그게 안 되니까, 항상 친인척이든 지인이든 같이 어딜 가고 이랬거든요. 그래도 그때도 나쁘진 않았던 것 같아요. 애들이 그렇게 유별나지도 않고, 차분하니 조용히 잘 따라줘서.

     지금은 아이들만 돌보고 계신 건가요? 
손송희  지금 일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일반 은행원이었었는데, 퇴사했어요. 그러고 2년 쉬다가 계약직으로 간단히 일할 수 있는 일 구했어요. 부산은행 파트타임으로 열흘만 근무해요. 시간상으로 여유로워져서 좋아요. 은행원으로 한 15년 정도 근무했었는데, 그때 번아웃이 왔었어요. 직장생활 하면서 상하관계가 너무 힘들었어요. 계속 다니던 회사인데도, 어떤 날에는 무심히 던진 말이 마음에 크게 다가오더라고요. 물론 괜찮은 날들도 있는데. 아닌 날들이 계속되는 거예요. 이러다가 일 마치고 집에 와서 아이들에게 화를 낸다든지, 별거 아닌 일에도 짜증이 나는 상황이 반복됐어요. 그러다 보니 ‘내가 이러면서까지 회사를 다녀야 할까?’ 의문이 생기더라고요. 그리고 당시에 아이가 학교에서 임원을 맡으면서 학부모 역할을 해 줄 사람이 필요했었어요. 그래서 퇴사를 결정하게 되었어요.
     퇴사 후의 삶은 어떠셨나요?
손송희  집에 있는 시간이 되게 좋더라고요. 그런 거 있잖아요, 아이들 학교 보내고, 브런치 타임이라면서 아침부터 커피 마시고 앉아 있는 엄마는 도대체 어떤 엄마일지 생각했었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런 엄마가 이제 제가 되어서 카페에 앉아 있는 거죠. ‘이게 이런 삶이었구나.’ 싶어요. 

     오롯이 육아 때문에 퇴사를 한 게 아니라, 일에 대한 스트레스도 커서 복합적인 문제로 퇴사를 결심하신 거네요. 
손송희  맞아요.

     일을 그만두며 본격적으로 아이들을 돌보게 되었는데, 어떻게 보면 해방이기도 하네요.
손송희  그러니까 되게 좋은 거야. 첫째가 초등학교에서 학생회장도 하고, 중학교 가서도 임원을 계속 맡으면서 학교 갈 일도 계속 생겨났어요. 그러다 보니 신랑도 뭐라 할 말이 없는 거예요. 아이들은 케어가 필요하니까요. 학교에서도 학부모의 역할을 요구하고, 아이가 학교든 단체에서 한 역할을 맡았을 때 학부모가 지원자로서 뒷받침해 주거나 지지해 주는 걸 감사해하거든요. 만약에 한 아이가 임원직을 맡았는데, 아이 엄마가 직장을 다니신다든지, 다른 사유로 지원을 못 해주면은 다른 부모님이 그 일을 대신하게 돼요. 내 아이가 임원도 아닌데도 해야 하는 일이 생기는 거죠. 그런데 요즘 다들 맞벌이하고 바쁘니까 활동을 못 하는 상황이 생기죠. 그런데 저는 일만 하는 엄마는 아니니까 바로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죠. 

     지금은 파트타임 일도 하면서 아이들 학교 일도 봐주고 계시잖아요. 삶과 일의 균형감을 잘 잡아나가고 계신 것 같아요. 
손송희  맞아요. 그래서 요즘에는 이런 생각이 들어요. 100세 시대라 하는데, 저는 아직 젊은 나이라고 생각해요. 뉴스랑 신문 보면 다들 치열하게 살고 있는데, 저는 ‘나는 이렇게 한가해도 되나?’란 생각을 하곤 해요. 제가 어렸을 적에 엄마의 삶을 되돌아보면, 제가 고등학교, 대학교 다닐 때도 엄마는 되게 열심히 사셨던 걸로 기억하거든요. 그래서 ‘나도 뭔가를 더 해야 되나?’ 그런 느낌이 들어요. 이런 이야기를 아이들에게도 해요. 그랬더니 엊그제 서윤인가? “엄마, 나랑 같이 공부할래?”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건 아닌 것 같아.”라고 단호하게 말했어요. 

     이야기를 들어보면, 전혀 한가해 보이진 않은 것 같은데요. 아이들 키우려면 학교에서 맡아야 하는 일뿐만 아니라 입시 정보 등 정보 모으는 것도 꽤 힘들다더라고요. 
손송희  맞아요, 아이마다 입시제도도 많이 바뀌어서 제가 알아야 할 것들이 많더라고요. 지금 입시제도는 첫째까지고, 둘째부터는 고교 학점제 전면 시행이고, 등급 제도도 5등급으로 바뀌고. 이런 것도 진짜 많이 알아야 하는 거예요. 아이들도 물론 입시제도를 알아야 하지만 학부모님들도 알아야 아이들 진로 설계를 도와줄 수 있어서, 교육청에서도 교육을 많이 하거든요. 그래서 그런 교육도 많이 따라다니고, 다른 학부모 얘기도 들어보고 하고 있어요. 제가 알아서 찾아서 동아리 있다고 하면 들어가고, 학교 교육이 있다고 하면 열심히 가요.
     아주 바쁘신데요, 정보력 싸움이네요.
손송희  그렇죠, 저도 서너번 교육 다니면서 듣다 보니 “아!”하고 알게 되는 거예요. 지금 초등학생 6학년 엄마들이나, 중1, 2 엄마들이랑 이야기해 보면 ‘학점제가 뭐야?’ 이렇게 이야기하거든요. 그래도 전 이런 제도들을 이해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교육을 열심히 들으러 다녀요. 

     아이들도 스스로 미래를 계획하겠지만, 그를 위해 어머니께서도 큰 노력을 하고 계시는 것 같아요. 아이들과 입시 이야기도 많이 하시나요? 
손송희  입시 이야기 많이 나눠요. 저는 목표를 정해놓고 목표 대학에 가고 싶으면 그 목표를 향해서 달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첫째는 ‘안전빵으로 가야지’, ‘이 정도 해서 여기 가면 되지 않을까?’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더라고요. 이런 부분이 저랑 안 맞아요. 특히 첫째는 부산이 좋대… 부산에 있을 거라 해요. 제가 받은 느낌은 ‘이 정도면 만족해’인 것 같아요. 
정서은  그렇지만은 않아.
손송희  제가 꼭 서울 스카이 아니더라도 중경외시 중에서라도 갈 수 있으면, 서울과 같은 큰 물에서 놀겠다고 계속 그러거든요. 저도 진주에 있을 때보다 부산에 있을 때가 좋아요. 이처럼 이렇게 큰 도시로 가면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서울이 낫지 않을까?”이러는데도 이견이 서로 좁혀지지 않아요. 예를 들어, 부산에서 뮤지컬 보려면 자주 공연이 있지 않아서 티켓팅하기 힘들어서 쉽게 볼 수 있지 않아요. 하지만 서울 가면 부산보단 자주, 편하게 볼 수 있잖아요. 
정서은  엄마, 서울에 대한 환상이야. 
손송희  그냥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거지.
     현실적인 거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정서은  저는 진로를 선생님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학교를 직장으로 두고 배정받은 학교 근처에서 살아야 하잖아요. 서울로 가서 서울에서 대학을 나오고, 서울에 정착한다고 하기에는 너무 힘든 삶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서울의 빡센 학교에서 수업하고 싶진 않아요. 그래서 ‘원래 살던 부산에서 선생님 하면서 살아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거죠. 

     선생님을 꿈꾸게 된 이유가 뭘까요?
손송희  첫째 초등학교 5학년 때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되게 좋으셨어요. 그렇다 보니 아이도 선생님이 되고 싶다더라고요. 그때부터 교대를 꿈꿨어요. 그런데 서이초 사건과 언론을 보면, 선생님들 일하는 환경이 되게 힘든 것 같더라고요. 학부모님들이 학교를 교육기관으로 생각해야 하는데 보육 기관으로 생각하고, 학교에 건의 넣는 분들도 되게 많으셔서 ‘진짜 힘들겠다.’ 싶어요. 그래서 아이에게 물어봐요. 이런데도 할 수 있겠냐고….
정서은  초등학교 때까지 교대를 생각했는데, 중학교 올라오면서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어요. 초등학교는 담임 선생님이 한 반 애들을 케어해야 해서 학생들에게 여러 과목을 가르쳐야 해요. 중학교는 자기가 하고 싶은 과목을 전공으로 공부하고, 동아리나 시험 문제 제출 등 선생님께서 하시는 업무가 많더라고요. 그리고 저는 중학교에서 글쓰기 동아리 했어요. 동아리 활동하면서 동아리 선생님이랑 이야기하고 활동하는 게 너무 재미있었어요. 선생님이 직접 이런 활동을 기획해서 학생들과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게 흥미로웠어요. 그래서 초등학교보다는 중, 고등학교 시스템이 더 재미있겠다 싶어서 교대는 포기했어요. 그리고 또 엄마가 말한 사건이랑 맞물리기도 했고요. ​​​​​​​
     그래서 첫째가 가지고 온 물건도 동아리 활동과 관련이 있는 물품이네요. 
정서은  제가 처음 만든 책이에요. 2학년, 3학년 동안 글쓰기 동아리 했어요. 동아리 이름은 ‘북적북적’이에요. 같이 책 읽고 글 써서 편집한 결과로 인쇄해서 책을 만들었어요. 책에 담겨있는 친구들과의 추억 그리고 제가 쓴 글의 기록이 소중하다고 생각해서 가지고 왔어요. 제 꿈 중 하나가 언젠가 제 이름으로 책을 내는 거예요. 이 책이 그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 저에게 제일 소중한 물건이에요.

     그런데 둘째가 가지고 온 물건도 책이네요.
정서우  해리포터 책이에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해리포터에 관심이 생겨서 도서관에서 3권씩 빌려 읽게 되었어요. 제가 상상하는 걸 좋아하는데, 이 해리포터가 딱 맞았어요.
손송희  얘는 해리포터 책을 맨날 읽어요. 그런데 한 책만 계속 읽는 거예요. 그래서 ‘얘가 왜 이러지?’싶고, 처음에 좀 이상했는데…. 좋아하는 게 있으면 그것만 맨날 보는 애들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진짜 좋아하나보다.’ 싶어요. 그때부터 시리즈를 하나씩 다 사 모으게 했어요. 그래서 둘째가 해리포터 책 시리즈별로 다 가지고 있는데, 맨날 보면 그 책들만 보고 있어요.
정서은  그래도 요새는 책이 빨리빨리 바뀌어. 맨날 읽다 보니까 한 권을 읽는데 속도가 엄청나게 줄었나 봐. 한 권을 빨리 읽고, 또 다른 책을 읽고 하지만.
     막내는 언니들과는 완전히 다른 물건이네요.
정서윤  포토 카드예요.

     BTS네요. 언제부터 좋아한 거예요?
손송희  입문한 지 얼마 안 됐어요. 몇 년 전에 부산 왔을 때, 그때까지도 별로 안 좋아했어. 그때 좋아했으면 진짜 광 클릭해서라도 갔을 건데, 그 이후에 좋아하게 되었거든요. 진짜 후회를 많이 했죠. ‘왜 더 빨리 안 좋아했지?’

     어머님도 셋째 딸이랑 덕질을 같이 하시나봐요.
손송희  비슷한 시기에 딸이랑 같이 좋아하게 되었어요.

     BTS가 왜 좋나요?
정서윤  잘생겼어요.
     어떻게 BTS를 알게 된 거예요?
정서윤  첫째 언니 때문에요.
정서은  제가 초등학생 때 방탄을 좋아했었어요. 지금은 “엄청 팬이에요.”할 정도는 아니고 관심 있게 찾아보는 정도예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아이돌에게 관심이 없다가 처음으로 갑자기 아이돌에 미쳐가지고, 혼자 엄청나게 좋아했어요. 이때 아무도 다 관심이 없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갑자기 언니의 영향이라고… 방탄 팬이 됐다고 이야기하네요. 셋 다 방탄 이야기하니까 엄마도 “방탄이 뭔데?”하다가 빠져들었어요. 지금의 저는 중학교 올라오고, 다른 할 일이 많다 보니까 아이돌은 잘 안 쳐다보게 되었어요. 
손송희  아미 팬클럽도 가입돼 있어요.
정서은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손송희  팬클럽 연장도 했어요. 내년에 콘서트 꼭 가야 되니까. 같은 관심사가 있어야 아이들과 소통도 되고, 서로 이해도 하고. 그런데 애들이 요즘 유튜브 릴스를 보고 인스타를 보더라고. 그래서 ‘인스타를 해야 하나’ 아이들과 소통하려면… 지금 제일 고민이에요.
정서은  안 돼.
     어머님은 아이들이 제일 소중하죠?
손송희  아이들은 이 세상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예요. 진짜 슬픈 얘기인데 아이들이 만약에 어떤 사고를 당하잖아요, 저도 아이들이랑 같이 가야만 할 것 같아요. 제 친한 친구 중에 아이가 먼저 하늘나라 간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는 너무 힘들어하다가 같이 하늘나라로 갔어요. 근데 문제는 그 친구한테 하늘나라로 간 아이 말고도 또 다른 아이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우리 친구들끼리는 친구 장례식장 가서 속된 말로 “미친년이다.”, “아이가 남아 있는데, 이 아이를 생각했어야지. 그걸 못 참고 갔냐.” 생각했었어요. 그 당시에는 그 친구의 행동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생각해 보면….
정서은  왜 그래, 울지 마.
손송희  우리 아이들 중 한 명이라도 먼저 가면, 혼자 하늘나라로 갈 그 아이가 너무 슬플 것 같은 거야. 그래서 ‘나라도 같이 가줘야 하겠다.’ 이런 생각이 들 것 같은 거예요. 요즘에 그 친구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어제 티비에 경남 고성이 나오던데, 그 친구 고향이 경남 고성이었어요. 보니까 생각이 확 나더라고요. 그래서 친구들끼리 미친년이라고 욕했던 게 너무 미안한 거예요. 그럴 수도 있었겠구나… 이제 생각해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요. 만약에 진짜 그런 일이 생기면, 먼저 갈 그 아이가 너무 불쌍해. 살아서 남아있는 애들보다 혼자 가는 애가 너무 외로울 것 같아서 따라갈 수도 있겠다…. 제 삶에 제일 소중한 건 아이들인 것 같아요. 되게 밝게 잘 자라주고 있어서 고마워요.

     딸 셋 엄마가 흔하지 않잖아요, 아이들과 이쁘게 좋은 시간 함께 많이 보내시길 바랄게요. 그럼, 나가서 다 같이 가족사진 찍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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