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분은 부부시죠? 결혼한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장은주  40년 정도.
고영길  1월 8일에 결혼식 했습니다. 

     기억하고 계시네요, 고향이 부산인가요?
고영길  아니에요. 저희 집사람 고향은 부산이고, 저는 전라도 구례예요. 여기 부산 철도청에서 근무했었거든요. 직장에서 장은주씨 만나가지고 사내 결혼을 했어요.

     사내 결혼하셨군요!
고영길  예, 그렇습니다.

     직장이 부산이라, 부산에 정착하게 되신 거네요.
고영길  제가 좀 복이 많았죠. 여기서 이렇게 좋은 사람 만나가지고. 

     어쩌다 영주동에서 살게 되셨어요?
장은주  영주동에 집을 보게 됐는데, 집은 작지만, 엄청 따뜻하게 보였어요. 그래서 샀죠.

     주택으로 이사 오신 거죠, 오신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장은주  한 7~8년 된 것 같아요.
     (남편을 보며) 왜 이렇게 굳으셨어요?
고영길  오늘 사진 촬영한다 그래가지고. 약간 많이 떨립니다, 지금.

     (웃으며) 긴장 푸세요. 남편 분께서는 사진을 찍으신다고 들었어요.     
고영길  예, 2016년에 정년퇴직을 했거든요. 퇴직하면 ‘노후에 뭔가 취미생활이라도 하나 해야 되지 않겠나?’해서 퇴직하기 2년 전에 카메라 DSLR 하나를 샀어요. 그때 처음 산 게 니콘 D 90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배우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취미로 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독학하신 거예요?
고영길  예, 제가 스스로 독학해 가면서 하고 있습니다.

     출사도 나가시나요? 
고영길  이곳 영주동에서 자주 찍어요. 영주동은 산복도로 위로 올라가면 하늘전망대가 있어요. 부산항 대교 주탑에서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어서 매일 아침 운동 삼아 올라가거든요. 올라가 가지고 사진도 찍고, 영상도 찍고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자주 찍는 풍경 사진이 있어요?
고영길  예, 날씨 좋은 날은 지평선에서 올라오는 오메가 사진도 상당히 많거든요. 그게 바다에서 태양이 떠오르는 사진이에요. 특히 영주동에서 찍은 사진이 많이 있어요
     태양 모양을 말하는 건가요?
고영길  예, 글자 오(O)자 같이 이렇게 생겼다고.
장은주  사람들은 오여사 이렇게도 불러요. 오메가를 본 날은 “오여사를 봤다.”고  표현하기도 해요.

     사진 출사와 관련한 다른 재미난 이야기도 있을까요? 
장은주  밤에 반딧불이 찍으러 간 적 있어요. 
고영길  이게 2시간 찍은 사진이에요. 이기대에서. 
장은주  30초 단위로 찍은 사진을 합쳐요. 

     정말 사진이 밝네요.
고영길  원래는 사진 찍은 현장은 깜깜해요. 깜깜해야 반딧불이가 보이거든요. 
장은주  보통 10시 반에 차가 끊겨요, 마을버스랑. 그런데 그때 돼서 반딧불이가 나타나. 10시 이렇게 돼야지 나타나요. 그렇게 하다 보니까는 그걸 찍고 집에 오려면은 늦어. 한 2시간씩 찍어야 하거든요. 그래서 데리러 가야 되다 보니까.

     그래서 아예 같이 가시네요?
장은주  맞아요, 저는 앉아 있다가 오고. 낚시는 고기라도 낚는데, 사진 찍는 2시간 동안 기다리려면… 

     남편분만 즐거우신 건가요?
장은주  가족들 놀러 가도 혼자 사진 찍기에 바빠요. 애들하고 손자, 손녀랑 어울림이 없고. 자기 일하느라 바빠. 그런 게 자주 발생하는 편이에요. 이제는 가족들이 “아버지는 원래 저래.”하고 이해하죠.

     이제는 ‘원래’라는 단어가 붙네요?
장은주  그냥, 기다려주는 거지 애들이.
고영길  (사진첩을 펼치며) 이것은 부산항 대교인데, 집에서 뽑아서 사진은 좋게 안 나왔어요. 인화지 사서 집에서 뽑은 거거든요. 이건 광안대교 해무 밀려올 때.
     직접 인화해서 앨범에 보관하시네요?
고영길  예, 괜찮은 사진은 집에서 포터에 연결해서 A4용지에 인화해서 이렇게 보관하고 있어요.

     이렇게 연도도 다 써놓으셨네요.
고영길  예, 내가 한 10년 정도 하다 보니까 외장 하드에다가 저장해놨거든요. 한 서너 개 됩니다. 

     애장품이겠네요.
고영길  아니요, 지금 취미로 이렇게 하고 있고, 저에게 소중한 물건인 건 수석이에요. 사연이 깊은 수석이거든요.

     한때 수석 모으는 게 취미였나 봐요.
고영길  당시 젊었을 때는 수석에 취미가 있었어요. 지금은 수석을 모으고 있진 않지만, 젊었을 때 했어요. 이게 ‘구갑석’이라고 하는 건데, 용호동 백운포에서 채취했거든요.

     직접 채취하셨다고요?
고영길  87년도인가? 그렇게 될 겁니다. 그때 배낭 메고 곡괭이 들고 갔죠. 파서 돌이 나오면 솔질하다가 이렇게 거북이 등 무늬가 나오면 집에 갖고 와서 다시 솔질하죠. 그때는 채취를 많이 했어요. 친구들과 가족, 친척들에게 선물 다 하고 이제 두 개밖에 안 남아 있어요.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네요.
고영길  이건 내가 다 못 하고, 주문 제작하는 수석 집에 의뢰해서 이렇게 만들었어요. 저희 장은주 선생은 별로 안 좋아하는데 신혼 초에 같이 가자고 해서 김밥 싸서 같이 갔었던 추억도 있죠.

     수석 캐러 같이 다니신 거네요.
장은주  같이 많이 다녔어요. 바닷가 가서 맨날 돌아다니고. 그때는 차도 없었을 때죠.
고영길  차도 없을 때, 대중교통 이용해 가면서 했거든요. 

     대단하신데요. 사진 찍으신다고 들어서 카메라 들고 올 줄 알았는데, 이렇게 수석을 들고 오실 줄은 몰랐어요. 그럼, 이 수석은 한 30년 된 거예요?
고영길  그렇죠. 정확히는 30년 조금 더 됐죠.

     이 수석이 나눠줄 건 다 나눠주고, 유일하게 남은 수석인 거죠? 수석은 선생님께 어떤 의미일까요?
장은주  수석을 구하려고 정말 많이 다녔거든. 산에도 다니고. 지금은 구할 수 없는 거잖아. 당시 백운포에서 크게 땅 팔 때 버려진 돌들도 주워서 그 자리에서 막 긁어보기도 했어. 아니면 직접 파보기도 하고. 무늬가 나오는 것만 골라서 집에 와서 또 갈고. 정말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야.

     돌을 발견하면, 희열감이 클 것 같아요.
장은주  돌이 보이면 “쓰레기장에서 건진 보석이네.” 그러죠. 조금이라도 좋으면 집에 와서 또 막 다듬는 거죠. 그러니까 그 시간이 엄청나게 들어요.
고영길  조금만 해보고, 문양이 나올 것 같으면 철제 솔로 갈고, 닦아내고, 손질해야 진정한 모습이 드러나는 거죠
     시간과 노력이 엄청나게 들어가는 취미네요. 수석, 사진 외에 또 다른 취미가 있으세요?
고영길  예, 사진에 취미가 있다 보니까 재작년에 ‘중구 노인복지관’에서 ‘중구 아세유’라는 중구 문화와 역사, 관광지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했어요. 영상을 1년 동안 배워서 이렇게 영상도 찍게 되었어요. 
장은주  이제는 동영상까지 취미가 늘어났답니다.
고영길  중구에 있는 40계단, 영도다리, 다음에 민주 공원 촬영도 해보고 선생님께서 편집하는 것도 가르쳐 주더라고요. 그때 처음으로 동영상 편집을 배웠어요. 그래서 지금도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아내분께서 남편분께서 하시는 활동에 대해서 잘 알고, 관심을 많이 가져주시네요?
고영길  그러니까요. 이렇게 이해를 해줘요. 제가 잘 만났어요. 보통 주변 보면 59세 때 퇴직하고 재취업을 하는데, 재취업 안 해도 다 이해해 줘요. 그래서 상당히 고맙게 생각해요. 집사람한테.

     아내분께서는 일을 한다고 들었어요. 
장은주  일을 하고 있어요.

     똑같이 정년퇴직하신 다음에 일을 새롭게 하신 건가요?
장은주  아니요, 우리 애가 4명이거든요. 그렇다 보니까 넷째 낳을 때 일을 그만뒀어요. 그때는 ‘퇴직금으로 살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퇴직금으로 안 되더라고요. 그래가지고 일을 하게 된 거예요. 그리고 49세에 방송통신대학교를 갔어요. 지금은 상담 일을 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이전에는 조금 여유롭게 살았는데 정년퇴직하고 놀아버리니까 수입이 완전히 반으로 줄더라고요. 그래서 일을 하는데 나이가 있다 보니 수입이 그만큼 줄어들더라고요. 올해 65세인데, 이력서를 넣으니까 다 떨어져서 내 나이를 실감하고 있어요. 게다가 아들은 공부하고 있어요. 그래서 일을 하면서도 수입은 좀 적지만 ‘올해, 우리 아들이 합격하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으로 이겨내고 있어요.

     지금 말씀하시는 아드님이 막내인가요?
장은주  막내가 아들이에요.
고영길  그리고 딸이 셋이고. 제 친구들은 둘만 낳았거든요. 근데 저는 많이 낳았습니다.
장은주  셋인데도 우리는 국가장학금이라든지, 그런 건 하나도 혜택을 못 받았어요. 그냥 둘이서 어쨌든지 애들 대학교까지 다 보냈어요.

     자녀분들 4명이나 공부시킨다고 애 많이 쓰셨겠어요. 아내분도 일하시면서 취미 생활을 하고 계시는가요?
장은주  저는 취미생활이 없어요. 대신 영주동 센터에서 하는 도시농부학교에서 진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어
     도시농부 수업은 언제부터 들으셨어요?
고영길  작년부터 했거든요. 1년 하고 올해 또 10주간 했고요. 매주 화요일만. 화요일 10시부터 12시까지 일주일에 한 번 해요.

     도시농부로 활동한 지 2년 정도 되셨네요. 두 분이 같이하신 건가요?
장은주  같이 갔어요. 남편은 이런 활동 하러 가는 거를 엄청나게 꺼려하고 잘 안 가요. 첫 발을 잘 못 디뎌요. 이게 남자들의 특징인지는 모르겠는데 남 앞에 잘 안 나서려고 해요. 교육 가자고 내가 신청해 놓으면 마지못해 가. 그래서 교육 들으러 혼자서 안 가니까 괜찮은 프로그램은 처음부터 계속 같이 가주고. 그다음에 저는 제 일인 상담 일정에 따라 조절하죠. 그래도 남편은 적응은 잘해요. 헌신도 하고. 첫 시작이 좀 어려운 사람일 뿐이에요.

     반대로 아내분 성격이 적극적인가 봐요.
장은주  남편은 배우는 걸 시작을 못 해. 그리고 저는 배우는 거를 엄청 쉽게 다가가고. 뭐든지 신청해 배우러 가고. 상담도 미술 치료부터 시작했어요. 왜냐하면 딸이 미술학원을 하는데 “너, 미술 치료 배워서 미술학원에서 사용해라.”하고 했는데 딸이 교육 들으러 안 간대요. 그래서 딸 대신에 내가 배우러 갔거든요. 미술 치료를 시작으로 상담 공부로 연결이 됐어요. 청소년폭력예방재단에 봉사하면서 ‘청소년만 변화하게 만드는 것만은 아니다, 가족을 변화시켜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신라대 가족학과를 가서 가족 상담에 대해서 배우고 했거든요. 그러니까 뭐든지 배우다 보면 길이 자꾸만 열리게 되더라고요. 근데 우리 남편은 그런 배움 자체를 아예 거부를 해. 사진도 협회나 이런 데를 들어가면 좀 쉽게 배울 수도 있는 거잖아요. 결국은 안 들어가고 독학으로만 공부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도 혼자 독학으로 했는데도, 부산시라든지 전국 공모전에서 수상을 해요. 장려상 10만 원짜리는 진짜 많이 타요. 최근에는 기상청 동영상 공모전에서 50만 원 따서 가지고 왔어요.
고영길  기상청 들어가 보면 수상작으로 제 작품이 나올 겁니다. 2022년 5월 6일 7시 44분. 영암 월출산 천왕봉 정상에서 찍었는데, 제 모습이 반대편 산에 그림자로 나타나요. 이걸 브로켄 현상이라고 하거든요. 그 현상을 사진도 찍고 한 일 분 정도 영상으로 담았거든요. 기상청에 제출하고, 특별상을 받았습니다. 

     대단하시네요! 통장 일도 하신다면서요?
고영길  예, 영주동 13통 통장을 하고 있거든요. 제가 영주동에 산 지는 얼마 안 됐는데요, 영주동이 젊은 세대보다도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많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3년 전인가? 이전 통장님이 70세가 넘어 통장을 그만두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저희 집사람보고 하라고 했는데, 집사람은 일이 바쁘고 해서 제가 대신하게 된 거죠. 통장 일을 해가면서 이렇게 취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통장 일은 어떠세요?
고영길  주민들 애로사항이 있으면, 동사무소 가가지고 전달해 주고. 13통에 개선할 점 같은 거, 바꿀 점 같은 거, 그런 거 있으면 제가 주민들한테 가서 수시로 가서 물어보고요. 저기 팔각정에 큰 나무가 있거든요. 매년 가지치기해야 하는데, 올해도 좀 해달라고 동사무소 가서 이야기하고. 우리 13통에 문제점이 생기거나 발견되면, 즉각즉각 동사무소 가서 해결해 주는 그런 가교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아주 바쁘게 살아가고 계시네요.
장은주  그래서 집은 항상 비어 있습니다.

     각자 생활하시다가 퇴근 시간 맞춰서 집으로 귀가하시는 거죠?
고영길  네.

     통장 일도 하고 사진도 찍으러 다니다 보니 밖에 있는 시간이 많으시겠네요. 보통 밖에서 어떤 일 하며 시간을 보내세요?
고영길  사진 찍으러 다니는 시간이 많은 것 같아요. 계절별로 사진 찍어야 하는 시간도 달라요. 아까 이야기한 영주동에서 일출 사진 찍으려고 매일 아침마다 올라가요. 겨울에는 해가 늦게 떠서 7시에 올라가도 되거든요. 그리고 금정산도 자주 가구요.
장은주  남편이 운전을 못 하거든요. 그래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해서, 새벽에 일찍 나가요. 저는 반대로 아침잠이 많아서 아침에 같이 못 나가고. 운전을 안 하니까 되게 힘들게 다녀요. 지금은 DSLR을 많이 안 쓰고 핸드폰으로 또 많이 찍어요.
고영길  이제 나이도 먹다 보니까 장비가 무거워서 어깨도 아프고. 집사람이 운전을 안 배웠으면 내가 했을 건데, 집사람이 운전하다 보니까 나는 안 했죠.

     아무래도 일을 하러 다니셔야 하니, 아내분께서 운전이 필요할 것 같아요. 
장은주  남편이 운전을 안 한 이유가 술을 좋아하는 이유도 있지만, 애가 4명이다 보니 키우기도 벅찬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차를 사!’라는 생각으로 운전을 안 한 거죠.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운전을 안 하게 된 거네요?
고영길  그렇죠. 그런 점도 있었지.
장은주  그리고 자동차 살 때, 저한테 절대 돈을 안 보태줍디다.
고영길  당시에 공무원 생활해 봤자 월급도 얼마 안 되고. 그러다 나중에 내가 퇴직하기 몇 년 전에 철도청에서 코레일 공사로 바뀌었어요. 그렇게 코레일 공사에서 한 2~3년 근무하다가 퇴직했거든요.

     (웃으며) 자동차 살 때 돈은 안 보태주셨지만 사진을 찍다보면 자동차로 움직여야할 장소가 있잖아요?
장은주  있어요. 겨울 새벽에 ‘기장’ 넘어가다 보면 물안개가 피어올라 오는 곳이 있어요. 새벽에 물안개 피는 사진 찍으러 가고 싶은데, 남편은 운전이 안 되니 못 가잖아요. 그때 운전할 사람이 필요 해서 저를 데리고 가는 거죠.

     수석도 그렇고, 사진도 그렇고 같이 다니고 계시네요. 도시농부도 함께 하시고. 아내분은 일을 좋아하시고, 남편분은 취미생활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장은주  저는 일하는 데서 즐거움을 더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일이 좋고. 취미생활은 이렇게 옆에서 하시는 분이 있으니까, 저에게 필요하진 않아요.

     사진 찍으면, 찍은 것을 아내분께 다 보여주시나요?
장은주  든든한 배우자인가 봐요. 찍은 사진을 저에게 줘요. 그럼 저는 제 친구들한테 쫙 뿌려요. 그런 재미가 있어요.

     성향이 다른 듯하면서도, 아예 달라서 서로 잘 맞는 걸까요?
장은주  본성은 비슷한데. 서로 조화롭게 잘 맞아요. 그리고 둘 다 착하고, 어떤 일을 하더라도 서로의 일에는 터치를 안 해요. 일을 하다 보면 늦게 들어오는 날도 있는데,  “왜, 늦게 오냐?” 이런 말도 잘 안 하고. 제가 공부를 해도 ‘저 사람이 공부하는가 보다.’, ‘책을 사는 갑다.’ 이 정도지. “너, 왜 책 사냐?” 이렇게 해버리면 싸움이 되잖아요. 근데 그런 게 없고 서로의 생활을 존중해 줘요. 그래서 식사 시간에 못 오면 알아서 차려 먹고. 다른 후배들한테도 그런 식으로 많이 이야기를 해줘요. 각자 알아서 잘 살아야 해. 항상 함께 있으면, 싸우게 되잖아요. 함께 있다가 또 각자의 생활로도 돌아갔다가. ‘이런 방식으로 함께 살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하곤 해요. 

     상대방과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배워가네요.
장은주  서로 너무 밀착돼서 생활하면 별로 좋지 않으니까. (서로 마주 보며) ‘각자의 생활을 서로 존중해 주자’ 이야기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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