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TERVIEWEE 변현지
EDITOR 정소란
EDITOR 정소란

이 주제를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의령을 돌아다니다 보면 예전 모습 그대로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오래된 상점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오래된 간판, 낡은 창문, 투박한 진열대까지… 저는 그런 공간들을 마주할 때마다 참 위안이 돼요. 화려하게 꾸미지 않아도, 단단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힘이 전해지거든요.

그곳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오랜 시간 마을 사람들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공간이 유지되는 것 자체가 마을의 이야기를 지키는 하나의 방법 아닐까요? 하지만 그 상점들을 찾아갈 때마다 사장님들이 “의령엔 사람이 없어서 힘들어요”라고 하시더라고요.

이렇게 아름다운 공간들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사라지는 게 너무 안타까웠어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잠시 멈춰 서 있는 듯한 공간이 주는 매력을 모두에게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저는 의령에서 잠시 살아보며, 이곳이 얼마나 천천히, 조용히 흘러가는 무해한 동네인지 느꼈어요.
바쁘고 복잡한 일상에서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그런 고요하고 따뜻한 곳이 너무 많더라고요. 그래서 이 감정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이번 로컬 코스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지도 속 공간 중, 가장 기억이 남는 곳은 어디었나요?
지도 속 공간에서는 일육서점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평소에도 어느 지역에 방문하면 그곳의 서점을 가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의령의 유일한 서점이 일육서점이더라고요.
거창한 말을 하지 않아도 빛바랜 간판이 그곳의 오랜 시간을 증명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과 그 틈을 채우고 있는 오래된 문구류를 보았을 때는 마치 보물찾기에 성공한 기분이 들기도 했어요. 초등학생 시절, 방학 숙제를 하겠다고 급하게 샀던 일기장, 필통 속에 하나씩 넣고 다녔던 네모난 지우개, 미술시간에 꼭 챙겨가야 했던 붓, 학교에 가져가서 친구들과 같이 가지고 놀았던 탱탱볼까지.

변치 않고 자리를 지켜준 물건들을 보니 세상은 그대로인데 저만 부쩍 커버린 것 같기도 하고 여러 가지 감정이 들었던 것 같아요. 확실한 건 그곳에서의 저는 잠시나마 걱정이나 근심을 내려놓고 어린 시절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는 거예요. 이 공간을 찾은 사람들도 한 번쯤은 자신만의 추억을 떠올리게 되겠죠?
어린 날의 설렘, 잊고 지냈던 소중한 순간들. 그리고 그 시절의 나를 만날 수 있는 곳. 일육서점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처럼 편안하고 따뜻한 서점이었습니다.

이 코스를 통해 사람들에게 어떤 감정을 선물하고 싶나요?
저는 사람들이 음악과 책을 좋아하는 이유가 변치 않는 것들을 언제든 꺼내볼 수 있어서라고 생각하거든요. 지금은 사라지거나 잊혀져가는 것들이 여전히 제자리에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위로가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이 코스를 통해,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온 의령의 공간 속에서 잊고 지낸 소중한 기억을 꺼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릴 적의 마음, 따뜻했던 기억, 비슷한 공간에서 추억들을 떠올리며 각자의 속도로 공간을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각자의 방식으로 그 여운을 안고 돌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지도가 본인에게 미친 영향이 있다면?
이 지도를 만들며 특별히 꾸며지지 않은 일상의 공간들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될 수 있는지를 느꼈고, 그 위로를 담아 전하고 싶다는 마음도 생겼어요. 또, 단순한 공간 기록을 넘어 제가 어떤 감정에 반응하는 사람인지, 어떤 것들에 마음이 움직이는지를 자연스럽게 알게 됐어요. 평소에도 공간들을 기록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 일을 왜 좋아하는지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어요.

앞으로도 저는 공간을 통해 마음을 들여다보는 기록을 계속 이어가고 싶어요. 그렇게 남긴 기록들이, 다른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행정안전부 청년마을 의령군 홍의별곡